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과 관련해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나흘 만에 열렸다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복잡한 안보 현실상 대응에 한계가 있긴 하지만 국방부 대책도 예전의 것들과 거의 같다. 도발이 있었음에도 통일부 장관은 남북고위급 회담을 제안하고, 반대로 국방부 장관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두 병사의 다리가 절단됐는데 대통령은 북한 경원선 기공식에 참석했다. 안보 컨트롤타워인 청와대의 국가안보실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운 정황들이다. 관련 부처가 정보를 서로 숨기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여권 일각에서는 북한 소행이라는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2009년부터 수색대 임무를 해온 베테랑 수색팀장 정교성 중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적의 공격”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당일(지난 4일) 오후 북한 도발 가능성을 아주 높게 봤다고 국회에서 답변했다. 우리 수색로에서 두 번이나 지뢰가 폭발했다면 도발 가능성이 짙은 것이다. 그렇다면 바로 대응 수위 조절 및 상황별 대처를 위한 NSC는 작동됐어야 한다. 혹시 상황을 냉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결론을 늦췄을 수도 있었을 법하다. 만약 그랬다면 옳든 그르든 그나마 상황 관리를 위해 전략적 검토를 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것 같다. NSC 상임위원장인 김관진 안보실장이 국방부 장관 시절 줄기차게 주장했던 ‘도발 원점-지원 세력-지휘 세력 타격’은 또 허언이 됐다.
통일부와 국방부의 엇박자 대응, 대통령의 기공식 참석을 놓고 일각에서는 대화와 압박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얘기한다. 어이가 없다. 투트랙은 정책에 관한 것이다. 주로 북핵 문제를 두고서다. 이번 건은 국토를 지키는 우리 병사를 살상하기 위한 군사적 도발이다. 비슷한 수준의 대응이 필요한 상황인 것이다. 투트랙 주장은 안보 대응 시스템의 실패, 안이한 판단을 덮기 위한 교언이다. 강경 대응만이 능사는 아니다. 그러나 자기 병사들의 목숨을 노리는데 매번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는 안보라인은 신뢰를 받지 못한다.
안보라인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다 보니 본질이 아닌 청와대 보고 시간이 또 문제가 된다. 한 장관은 국회에서 청와대 보고 시점을 4일 오후라고 답변했다가 하루 뒤 5일이라고 수정했다. 단순 착오라는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를 들었지만, 그렇다면 지뢰 도발 가능성이 아주 높다는 판단을 하고도 즉각 청와대에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인가. 이번 도발은 사망자만 없을 뿐 북한군의 기습이란 점에서 천안함·연평도 도발과 똑같이 엄중한 사안이다. 그럼에도 국방부 장관이 대통령과 직접 통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정말 문제다. 안보실장이 보고를 했다는데 보고 단계만 하나 더 늘어난 것 같다. 안보실 기능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군통수권자인 대통령은 접적 지역에서 병사가 임무를 수행하다 적의 공격을 받아 중상을 입었는데도 특별한 반응이 없다. 세월호 때도, 메르스 때도 대통령은 국가 최고 리더십으로서 초기에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다. 대통령이 나서서 상황을 더 크게 만드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의 도발 상황에서 국민에게 각인되는 군통수권자로서의 존재감은 있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정치가 아니라 진정으로 병사들과 국민과 함께한다는 뜻에서 말이다. 지뢰 도발에 대한 대처 과정은 외교·안보 컨트롤타워로서 국가안보실이 이렇게 기능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드러냈다. 시스템이든, 사람이든 안보라인의 재정비가 필요하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여의춘추-김명호] 이런 국가안보실 필요한가
입력 2015-08-14 0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