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만 변호사의 성경과 법] 여호와의 문

입력 2015-08-15 00:24

의뢰인이 서류를 박스 째 가지고 와서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그는 이미 대법원 판결까지 받았으나 “억울하다”며 이곳저곳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다니는 듯 보였다. 그는 매우 지쳐 보였으나, 이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데 인생 모두를 바칠 각오가 있는 것처럼 결연하게 자신의 결백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재판을 한다고 해서 언제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는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이 집행된 후에 진범이 체포된 경우도 여러 사례가 있었다. 미국의 주지사는 살인범의 사형집행장에 서명을 하려던 찰나에 진범이 잡히자 놀라서 주의 사형제도를 폐지하는 법안을 발의하여 통과시킨 적도 있다.

진실과 사실은 어떻게 다른가. 진실이란 실제로 있었던 사건 그 자체로 실체적 진실이라고 한다. 사실이란 법원이 판결문에서 확정한 법적으로 인정된 사실로서 법적사실이라고 한다. 수사기관의 수사과정이나 법원의 재판과정은 실체적인 진실을 찾기 위한 과정이다. 수사기관은 수사를 통하여 법원은 재판과정을 통하여 실체적인 진실을 찾지만 언제나 진실을 밝히지는 못한다. 잘못된 수사나 오판으로 실체적 진실을 가릴 수 없는 경우도 생긴다.

중세시대에 마녀재판을 할 당시에는 끓는 기름에 손을 넣고 화상을 입으면 유죄, 화상을 입지 않으면 무죄라고 판단하였다. 조선시대에도 재판관은 “네 죄는 네가 알렸다”라고 자백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현대에는 수사기관의 수사나 재판은 민주적인 절차적 통제를 받는다. 수사기관은 법원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 구속할 수 있고, 법원은 공정한 재판절차에 따라서 재판을 하게 되며 자의적인 절차로 재판을 할 수 없다.

문제는 합법적이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서 수사를 하고 재판을 한다고 하여도 법적으로 인정된 사실이 반드시 실체적인 진실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이나 법관은 사건 당시 그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현장에 있었던 가해자나 피해자의 진술, 목격자, 정황증거들을 종합하여 법적으로 사실을 확정하고 그 사실을 실체적인 진실이라고 보는 것이다. 죄 없는 사람도 판결문에서 범죄자로 확정하면 그 사람은 범죄자가 되는 것이다.

어느 재판장은 민사재판 도중에 도저히 누구 말이 맞는지 알기 어려울 때 그래도 조금 더 설득력이 있는 측의 주장을 들어 줄 수밖에 없는 고통스러운 입장에 놓인 적이 있었다는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그는 판결을 하면서 “법원은 언제나 진실을 밝힐 수는 없다. 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현재 상태에서는 자신의 판단이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판단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대는 법적 절차가 보다 완비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비하여 오판이 적지만 그래도 수사기관이나 법관은 신이 아니므로 잘못 판단할 수도 있다.

지금도 서울 중앙지검 정문 앞에는 어느 초로의 노인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10여 년 전에는 건장한 청년이었지만, 지금은 깡마른 초로(初老)가 됐다. 진실은 밝혀져야 하므로 밝히고자 하면 밝혀질 수는 있다. 그러나 크리스천으로서 도저히 진실이 밝혀 질 수 없는 벽 앞에 섰다고 느끼면 그 벽 앞에서 인생을 허비하기 보다는 또 다른 문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닌지!

그 문도 없는 벽 앞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을 보면 매우 안타깝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문들이 자신을 열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성경에 “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시 118:20)라는 말씀이 있다. 이 문을 여는 순간 더욱 찬란한 새로운 길을 하나님은 예비하셨을 수도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재만 변호사 (충신교회 안수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