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가위바위보도 지면 안 된다는 국민 정서에도 불구하고 (대 일본전에서) 주전 9명을 뺐다. 그리고 결과로 자신이 지혜로웠음을 증명했다.”
국가대표 축구팀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에 대한 대한축구협회 관계자의 평가다. 그는 “군대 지휘관으로 본다면 (슈틸리케 감독이) 지장(智將)·용장(勇將)·덕장(德將)의 모습을 골고루 갖췄다”고 평했다.
축구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슈틸리케 감독을 들먹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지난 4일 신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된 정진엽(60) 서울의대 정형외과 교수가 생각나서다. 그간 공·사석에서 내 눈에 비친 정 교수 역시 그와 비슷한 이미지였다. 평생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아이들을 돌봐온 탓일까. 그에게선 따뜻한 인간애가 느껴지면서도 쉽게 범접하기 어려운 권위 같은 게 있어 보였다. 정 교수의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 소식에 남다른 소회와 기대감을 품게 된 이유다.
한마디로 개인적 호감을 떠나 정 교수의 장관 내정은 의료복지와 사회복지의 균형 발전을 위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정부로선 언젠가 한번은 써봄직한 카드였다는 뜻이다.
정 교수는 서울의대 73학번이다. 그는 본과 1학년이던 1975년 4월, 유신반대운동에 참여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무기정학 처분을 받아 동기보다 1년 늦은 1980년 졸업했다. 서울대병원 신장내과 안규리, 종양내과 허대석 교수 등이 졸업 동기다. 정 교수보다 한 살 많은 손명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도 같은 해 연세의대를 졸업했다. 방영주 서울대의생명연구원장은 1973년 서울의대 입학 동기다. 성상철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과 박재갑 전 국립암센터 원장, 이종철 전 삼성의료원장 등은 6년 위 선배, 대통령 주치의 서창석 교수(산부인과)는 6년 아래 후배다.
모두 이 나라 보건의료계에서 능력이 출중하다고 평가받는 명사들이자 전문가들이다. 이렇듯 주위에 유능한 일꾼이 많으니 이들만 잘 써도 못할 일이 없을 듯하다.
문제는 정부가 해야 할 일이 병원 경영과 사뭇 다르다는 것이다. 정부는 돈을 쓰는 곳이지 버는 곳이 아니다. 병원 경영에선 현행 의료제도의 빈틈을 노려 진료 및 부대사업 수익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최선이다. 정부는 이와 반대로 그런 제도적 허점을 보완해 단 한 명이라도 억울한 국민이 없게 공정한 행정(정책)을 폈을 때 ‘잘했다’는 박수를 받는다. 말 그대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국민의 보건복지 증진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까닭이다.
보건복지부는 현안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당장 의료 분야만 해도 메르스 사태로 불거진 질병관리본부의 조직 재정비 및 기능 강화와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논란, 원격의료 서비스 도입 문제, 포괄수가제 확대 등 의료비 지불제도 개선까지 풀어야 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국민연금, 기초연금, 장애인복지 문제도 곪아서 터지기 직전의 상황이다.
우리는 지금 누가 수장이 되는가에 따라 조직이 달라지는 예를 슈틸리케 감독 체제의 국가대표 축구팀에서 보고 있다. 슈틸리케 감독 체제의 순항과 잇단 승전보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인재를 발굴, 기존 선수들과 조화를 이루게 한 리더십의 산물이다.
그동안 우리나라 보건복지 정책이 헛발질을 해온 이유는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조직이 작아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조직이 필요로 하는 사람을 제때 잘 쓰지 못한 탓이 더 크다. 바로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 정 교수가 앞장서서 개선해야 할 일이다. kslee@kmib.co.kr
[내일을 열며-이기수] 정진엽 장관 내정자에게 바란다
입력 2015-08-13 00:20 수정 2015-08-13 1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