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DMZ 지뢰 도발] 지뢰에 날아간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입력 2015-08-13 02:05

3년째 ‘미완의 구상’으로만 남아 있는 박근혜 대통령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또 하나의 암초를 만났다. 북한이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도발을 자행하면서 남북관계는 개선될 기미는커녕 일촉즉발의 군사적 긴장상태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벌써 정치권 일각에선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신뢰를 쌓아 공존의 관계로 나아가겠다”던 박 대통령의 구상은 ‘휴지조각’이 될 공산이 크다는 말이 나온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이야말로 남북관계를 개선할 ‘골든타임’”이란 기대감이 팽배했다. 집권 3년차를 맞아 박 대통령이 관계회복을 위한 다양한 시도에 나설 것이고, 북한 역시 국제사회의 압박에 못 이겨 전향적으로 바뀔 것이란 분석에 따른 것이다.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 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1월 신년사도 이를 뒷받침하는 근거였다.

그럼에도 남북은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했다. 3월 한·미 합동군사훈련인 키 리졸브(KR)·독수리(FE)훈련이 시작되자 북한은 “핵전쟁 연습”이라고 반발하며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로 맞불을 놨다. 이 시기 발생한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테러 사건을 두고 북한이 ‘의거’로 치켜세운 것도 악재 가운데 하나였다.

한·미 군사훈련이 마무리된 4월부터 변화의 조짐이 나타났다. 신호탄은 남측이 쏘아 올렸다.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4월이 지나면 남북관계에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했고, 15t의 적은 양이었지만 5·24제재조치 이후 처음으로 대북 비료지원이 승인된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북한’은 이를 뿌리치고 긴장감만 더 고조시켰다. 5월 초 동해상에서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을 실시하는가 하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하루 전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핵 타격 수단이 소형화 단계에 들어섰다”고 으름장을 놨다.

사소한 마찰도 계속됐다. 개성공단 임금인상 문제는 지난달 초 남북공동위가 결렬된 이후 아무런 진전을 보지 못했으며, 6·15, 8·15 기념 남북공동행사 역시 양측 당국 간 기싸움 끝에 무산됐다. 관계 회복의 ‘마지막 희망’으로 기대를 모았던 이희호 여사 방북은 북측이 김 제1비서와의 접견뿐 아니라 다른 고위급 인사와의 만남도 거절하면서 별무소득에 그쳤다.

DMZ 목함지뢰 도발은 이 여사가 방북하기 하루 전인 지난 4일 북한군 최전선부대에 의해 자행됐다. 처음부터 북한은 남북대화나 관계개선에 별다른 의지가 없었던 셈이다. 앞으로 당분간 양측은 극한 대립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북한이 침묵하고 있지만, 이번 사건에 대한 우리 군의 발표에 대해 ‘조작’이라고 부인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한 북한 전문가는 12일 “이명박정부도 집권 3년차에 천안함 피격, 연평도 도발로 남북관계 개선의 모멘텀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며 “박근혜정부의 집권 3년차도 비슷하게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