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0년이다. 먼저 일제 식민지배의 아픔을 곱씹으면서 해방의 감격을 되새겨 보자. 해가 지나가도 아픔과 감격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일은 우리 민족의 당연지사이다. 광복은 옛것의 마감이며 동시에 새것의 시작이라야 한다. 문제는 마감과 시작이 제대로 승계되고 발전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광복은 외형상으로는 일단 성취되었다. 하지만 내면적으로는 아직도 갈등 속에 진행 중이다. 예를 들면 독도 영유권 분쟁이 그 하나이고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식민지배 만행에 관한 사죄가 다른 하나이다. 그 처방은 이래야 한다. 일본은 진정으로 ‘사죄’를 선언하고 한국은 과감하게 ‘용서’로 화답하여 광복 70년을 화해와 협력의 새 시대를 여는 출발로 삼아야 한다.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마라”는 역사의 교훈이다. 가해자의 사죄와 피해자의 용서는 불행한 과거를 극복하고 행복한 미래를 가능케 한다. 그렇다고 암울했던 과거를 잊어버리자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기억하여 재발하지 않게 다짐하는 결단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사죄를 빌 수 있는 용기와 용서를 선포할 수 있는 힘은 평화를 이루려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다.
광복은 새 역사를 만드는 계기가 되어야 옳다. 그것은 새로운 한·일 공동의 광복이어야만 한다. 일본으로서는 8월 15일이 패전의 굴욕과 분노의 날이 아니라 불의한 식민지배 야욕에서 해방되어 이웃 세계와 함께 화해와 평화를 위해 나서라는 사건으로, 곧 옛 일본에서 새 일본으로 거듭나는 광복의 날로 경축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불행한 식민지배에서 해방되어 이웃 국가들과 협력하여 평화공동체를 적극적으로 이루라는 사건으로, 곧 옛 조선에서 새 한국으로 거듭나는 광복의 날로 경축할 수 있다.
가해자 나치 독일과 피해자 프랑스가 그와 같은 방식의 사죄와 용서의 화해를 꾀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두 나라는 새 독일과 새 프랑스로 거듭났고, 합의 기술한 ‘역사교과서’를 만들어 학교에서 가르치고 유럽 평화와 협력을 위한 힘 있는 쌍두마차로 기능하고 있다. 적어도 동북아의 평화와 상생을 위해서는 한·일이 함께 경축할 수 있는 ‘새로운 광복’이 필수적이라 믿는다.
혹자는 오늘날 한·일 화해가 자칫 한·중 간 새로운 갈등의 빌미로 작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염려하는 모양이다. 차제에 우리는 새로운 광복의 정신을 적어도 동북아 지평 위에서 구현한다는 확고한 국제관계의 틀을 천명해야 할 것이다. 미·중, 중·일 간의 갈등관계에서 때로는 원칙조차 없어 보이는 눈치 보기 외교를 지양하고, ‘새로운 광복’이라는 정신사적 상생의 원칙에서 적극적이고 때론 과감한 외교를 펼칠 필요가 있다.
한·일 화해를 행여나 있을지 모르는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감안하여 유야무야 처리할 필요는 없다. 사드 배치가 한·미 안보협약의 테두리를 넘어 대북안보와 동북아 균형평화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사전에 중국을 설득하고 필요한 조치를 취하면 될 것이다. 동시에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미·일이 중심이고 한·미는 오래전부터 종속변수로 작용해왔음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한·미·일 연대의 귀중한 축을 실리적으로 감당하는 게 맞다.
한반도의 미래운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칠 미·중 헤게모니 경쟁을 부정적인 대립의 측면에서 보고 불편한 편들기 압력에 고민하기보다, 궁극적으로 미·중 관계가 ‘동북아 평화 거버넌스’라는 경쟁 속 협력체제로 이행할 것이라는 장기전망 위에서 한·미 관계는 물론 한·중 관계도 창조적이며 적극적으로 심화·확대시켜가야 한다. 결국 한·일, 한·중, 한·미 간 관계설정이 갈등과 대결이 아닌 공존과 상생이라는 틀을 기준으로 편들고 협력하는 자세를 견지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박종화 경동교회 담임목사
[시사풍향계-박종화] 광복 70년-돌아보고 내다보며
입력 2015-08-13 00:30 수정 2015-08-13 1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