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단비 기자의 암환자 마음읽기] 사별 슬픔 자녀도 이해 못할땐 상담 전문가와 만남이 큰 도움

입력 2015-08-17 02:18

5년 전 대장암을 앓던 그녀의 남편은 그 해 단풍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남편은 아내에게 ‘단풍놀이 가자’는 약속 따윈 하지 않았다. 부부는 다가올 이별을 덤덤해 받아들였다. 어느 날 주치의는 아내를 불러 오늘밤 남편이 죽음으로 가는 잠에 빠져들 거라고 말했다. 만약 생에 미련이 있다면 다시 깨어날 것이라고 했다. 남편은 다시 깨지 않았다.

남편이 떠나고 아내는 바람 앞에 놓인 촛불처럼 흔들렸다. 그녀도 스스로 놀랐다고 한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고 부부가 평생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아내는 스스로 병원의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경제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장성한 자녀들도 있었지만 사별로 인한 슬픔은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아내는 “혼자 집을 보던 아이가 엄마를 만났을 때 하소연하는 것처럼 나는 의사선생님 앞에서 응석받이 아이가 되어 지난 일주일 동안 소용돌이쳤던 감정들을 쏟아내곤 했다. 전문가 상담은 사별이라는 낯선 상황에 놓인 나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새로운 삶으로 안내해주었다”고 털어놓았다.

내년이면 70세가 되는 여성이 있다. 이 여성도 몇 해 전 남편과 사별했다. 그녀는 “사별이 주는 감정이 참 독특하다”며 “나도 나이가 들면서 나의 죽음을 생각하고 배우자의 죽음도 상상해보면서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해 왔지만 떠나보내는 마음이 이토록 고통스러울지는 몰랐다”고 고백했다.

갑작스런 사고로 배우자를 잃은 것도 큰 슬픔이지만 암이란 예견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에도 체감하는 슬픔의 크기는 똑같다. 앞서 두 사연의 주인공 모두 살아온 세월이 길다고 슬픔이 경감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들은 공통적인 극복의 방법으로 전문가와의 상담을 택했다. 두 여성에게는 장성한 자녀들이 있었지만 자식들이 사별로 인한 슬픔을 덜어주진 못한다는 점도 공통적이었다. 오히려 지나치게 슬픈 감정에 빠져있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자식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 때쯤 정신과 전문의를 찾았다.

사별 극복 수기를 살펴보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은 경우가 드물지 않다. 자신의 감정을 토로하고 싶은 자와 모든 걸 이해할 준비가 된 심리 전문가가 만났으니 당연한 결과다.

아직까지 정신과 상담과 일반인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 또는 삶과 죽음을 이해하는데 아직 서툰 우리들에게는 보다 전문적인 조력자가 필요하다.

김단비 기자 kubee08@kuki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