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 봅시다] 성범죄자 ‘20년 일괄 꼬리표’ 안된다

입력 2015-08-12 02:37

지하철에서 여성의 엉덩이를 만진 혐의(강제추행)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취업준비생 A씨. 그는 벌금 100만원이 선고되자 즉각 항소했다. 벌금 액수에 불만이 있어서가 아니라 성범죄로 유죄가 확정되면 20년간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신상정보 등록’ 명령 때문이었다.

A씨는 “내가 잘못한 것은 인정하고 반성한다. 하지만 한 번의 실수로 20년간 경찰 관리를 받게 하는 건 지나친 데다 형평성에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벌금형이라도 유죄가 나오면 A씨는 20년간 이사할 때마다 관할 경찰서에 신고하고, 매년 한 번씩 경찰서에 가서 정면·좌우 사진을 찍어야 한다.

이는 현행 ‘성폭력 특례법’의 신상정보 등록·관리 조항에 따른 것이다. 이 법 42조 1항은 특수강간, 강제추행, ‘몰카’ 촬영 등 성범죄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형사피고인을 신상정보 등록대상자로 지정하고 있다. 45조 1항은 이런 신상정보를 20년 동안 보존·관리토록 해 놨다.

죄질과 상관없이 모든 성범죄자에게 20년간 신상정보 등록을 의무화한 이 법률은 이제 바뀌게 됐다. 헌법재판소는 “신상정보 등록을 ‘일괄 20년’으로 규정한 성폭력 특별법 45조 1항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등을 침해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했다고 11일 밝혔다. 다만 같은 법 42조 1항(등록대상자)은 합헌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카메라로 여성의 신체를 촬영해 유죄판결을 받은 이모씨 등 5명은 해당 조항이 평등권 등을 침해한다며 위헌확인 심판을 청구했었다.

헌재는 “재범 위험성은 성범죄 종류, 범죄자 특성에 따라 다른 만큼 신상정보 등록기간을 다르게 해 개인정보 자기결정권 제한을 최소화해야 한다”며 “선고·형량 등에 차등을 두는 다른 형사정책과도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현 등록기간 조항은 법률이 개정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적용된다. 개정되지 않아도 2017년부터 자동 폐기된다.

신상정보 등록 제도는 2005년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에 처음 도입됐다. 당시 등록 기간은 5년이었다. 이 기간은 2007년 10년, 2010년 20년으로 5년 만에 4배로 늘어났다. 2012년 12월에는 범죄의 경중(輕重)에 상관없이 모든 성범죄자에게 ‘일괄 20년’으로 확대됐다.

이후 신상정보 등록기간의 형평성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됐다. 교화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소년범에게도 똑같이 적용돼 가혹하고, 과잉금지 원칙 등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건 당사자는 물론 판검사들도 “비교적 경미한 범죄는 벌금형보다 신상정보 등록기간이 더 중한 형벌이 됐다”고 토로해왔다.

대검찰청이 신상정보 등록 대상의 혼선을 막기 위해 ‘성범죄자는 약식기소보다 정식재판 위주로 진행하라’는 방침을 하달하면서 재판 건수도 크게 늘었다. 경미한 사안이 많아 주로 약식기소 되던 강제추행죄는 정식재판 건수가 2011년 788건에서 지난해 5587건으로 7배 넘게 증가했다. 반면 약식기소 건수는 같은 기간 2809건에서 288건으로 9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헌재 결정으로 법조계는 재판에 드는 실무적 부담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서울의 한 판사는 “벌금을 내고 말 범죄자들이 정식재판을 받으면서 낭비됐던 비용·시간 등이 줄어들 것”이라며 “입법부에서 범행 정도나 전과 유무 등에 따라 신상정보 등록기간을 정하는 구체적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민철 정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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