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박천록 (17) 16년간 1만여명 전도했지만 두 번째 추방 ‘시련’

입력 2015-08-13 00:38
미국 스티브김 재단 지원으로 세운 암박 미션스쿨과 직접 쓴 간증집 ‘사명의 표지’

방글라데시 선교 16년을 맞은 2007년, 그동안 몰라떽교회를 중심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가 1만명은 될 것 같았다. 여건상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이도 많지만 몰라떽교회가 방글라데시 선교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것만은 확실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다.

학교도 계속 발전을 거듭해 몰라떽의 경우 고등학교 과정까지 만들었다. 무상교육이라 예산이 많이 들지만 사회가 필요로 하는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배출해 미션스쿨로 자리를 잡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신앙으로 무장된 이곳 출신 학생들이 방글라데시가 필요로 하는 목사, 변호사, 의사, 교사 등 인재들이 계속 배출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는 방글라데시 복지법인을 갖고 있어 1년마다 체류 연장을 받았다. 만기가 되어 관청에 갔더니 한국의 대사관에서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으로 나왔는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에게 비자를 주지 말라는 정부의 특별지시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1급 비밀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1차에 이은 두 번째 추방이었다. 첫 추방 때 내가 워낙 강하게 항의하고 안 나가려 했더니 이번엔 꾀를 낸 것이다. 나의 죄명은 “교회를 세워 현지인을 강제로 개종케 했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이슬람이 90%인 사회에서 기독교 선교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다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나마 이번에도 아내는 제외돼 학교는 계속 운영할 수 있었다. 안식년이라 생각하고 고향 포항으로 내려갔다.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너의 16년 방글라데시 사역을 글로 쓰라”는 미션을 주셨다.

공부도 많이 못했고 문장력도 없지만 시간이 남으니 간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가물가물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은 선교일기가 큰 도움이 되었다. 이렇게 2년여 산고 끝에 나의 간증집 ‘사명’이 발간됐다.

많은 분이 이 간증집을 읽고 은혜를 받고 기도로 응원해주고 후원에 참여해 주었다. 420쪽이 넘는 이 간증집은 소설처럼 구성돼 은혜롭게 읽은 분들이 전도용으로 더 구입해 주셨다. ‘역경의 열매’ 연재에 나온 이번 간증은 책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책의 수익금은 모두 방글라데시 선교에 사용하고 있는데 한 권(1만4000원)의 수익금이 한 학생의 한 달 점심값이 된다. 내가 대표로 있는 러브방글라데시미션(LBM·02-596-4005)에서 출간했고 주문도 받고 있다. 하나님이 문서선교도 하고 운영비도 마련하라고 글을 쓰게 하신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 책 ‘사명’을 읽고 감동 받은 분들이 지원을 하여 약 8년 동안 방글라데시에 교회 7개, 미션스쿨 7개를 세울 수 있었다. 책을 쓰게 하신 것이 선교엔 더 효과적이었다.

현재 아내는 3000여명이 공부하고 있는 9개 미션스쿨을 관리한다. 내가 두 번이나 추방당해도 이곳 선교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방글라데시 100년 선교 비전’이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선교는 단기 전략으로는 불가능하다. 최소한 50년, 100년 앞을 내다보고 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앞으로 빈민가 어린이들을 위한 미션스쿨 100개와 교회 100개, 기독교 대학교, 병원, 고아원 등을 세워 기독교 신앙과 정신을 가진 인재 양성을 하고 복음을 전함으로 100년 후 방글라데시 30% 복음화를 이루려는 꿈을 갖고 있다.

여전히 교회를 향한 현지인들의 핍박은 계속되고 있다. 2014년 암박지역에 교회가 세워질 때 지역 무슬림들이 들고 일어나 교회와 학교 건물을 부수고 성경책들을 모아 불지르고 목사 가족들을 칼로 찔러 크게 다친 적도 있다. 이처럼 사역은 여전히 힘들고 어렵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