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문가들은 크게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식물 이름에도 일제 잔재가 많이 확인된다. 그래서 산림청 국립수목원이 광복 70년을 맞아 한반도 자생식물의 영어이름을 새롭게 정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예컨대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인 소나무(적송)는 영어명칭이 ‘재패니즈 레드파인(Japanese red pine)’으로 돼 있다. 벚나무의 영어이름도 ‘재패니즈 플라워링 체리(Japanese flowering cherry)’다. 국립수목원은 소나무를 ‘코리안(Korean) 레드파인’, 벚나무를 ‘오리엔털(Oriental) 플라워링 체리’로 부르기로 했다.
소나무의 분포 지역을 보면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걸쳐 있지만 한국은 북부 아고산지대를 제외한 전역인 반면 다른 나라는 일부에 그친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분명히 소나무 분포의 중심이다. 벚나무 역시 한국, 중국, 일본에 걸쳐 넓게 분포하지만 벚나무류가 일본의 상징으로 알려지면서 그 이름들에 ‘재패니즈’가 붙게 됐다.
그밖에도 울릉도 특산식물인 섬벚나무의 영어명칭 ‘다케시마(Takeshima) 플라워링 체리’를 ‘울릉도(Ulleungdo) 플라워링 체리’로 바꿨다. 역시 울릉도 특산으로 영어명칭이 없던 섬초롱꽃에는 ‘코리안 벨플라워(Korean bellflower)’라는 이름을 붙였다. 국립수목원은 국가표준식물목록 중 자생식물 4173종의 영어이름을 검토해 2500종의 이름을 고쳐 ‘한반도 자생식물 영어이름 목록집’을 발간했다. 왜 이제야 제 이름을 갖게 됐는지 만시지탄이다.
동식물에 대해 세계 공통의 학술적 이름인 학명은 처음 붙여진 이름에 선취권이 있어서 바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일반 명칭은 같은 식물에도 나라마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다채롭다. 따라서 사람들이 자주 부르고 써서 널리 알려지는 이름이 다른 이름을 몰아내고 우선한다. 새 영어이름을 자주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사설] 일제 강점기엔 식물 이름마저 빼앗겼었다니
입력 2015-08-12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