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 유적지에서 외친 “민족을 하나로 이어주소서”

입력 2015-08-12 00:02
70∼90대 원로목사들이 11일 6·25전쟁 때 폭격으로 무너진 강원도 철원제일교회 터를 방문해 손을 잡고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철원=강민석 선임기자
1930년대 철원제일교회 옛 모습.
근대문화유산 제23호로 지정된 철원제일교회 옛 터.
찜통더위가 맹위를 떨친 11일 낮. 비무장지대(DMZ) 인근에 위치한 강원도 철원제일교회 이상욱(55) 목사는 20여명의 원로목사들을 교회 앞으로 인도했다.

새로 지어진 현대식 교회 옆에는 한민족 분단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옛 교회터가 남아 있었다. 마치 잘려진 한반도의 허리처럼 흉물스런 기둥과 벽면은 6·25전쟁 당시 폭격의 상흔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이 목사는 폭격으로 무너지기 전인 1930년대 교회 모습을 공개했다. 그리고 폐허로 남은 교회터에 무릎을 꿇었다. 원로목사들도, 함께한 기자도 동참했다. 찬송가 한 장을 부르는 데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올해 93세인 고희집 목사 등 70∼90대 노(老) 목사들은 ‘광복(분단) 70주년, 한반도 평화통일 기원예배’를 드렸다. 이 민족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민족이 되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한국교회의 연합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교회마다 거룩함을 회복하고 전도의 열정이 충만한 교회가 되기를 기원했다.

“주여” “복음통일”을 몇 번이고 외쳤다. 태극기를 흔들며 통성기도를 드렸다. 무너진 교회 벽에 손을 얹고 부르짖는 노 목사의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간구하는 원로목사들의 기도는 무더위까지 날려 버렸다.

철원제일교회는 선교와 애국운동의 중심지였다. 1919년 당시 박연서 담임목사를 중심으로 강원도에서 가장 먼저 3·1만세운동을 일으켰다. 항일단체인 ‘철원애국단’을 조직해 국내 독립운동 상황을 상하이 임시정부에 보고했다. 이 단체는 단원 23명이 일본 경찰에 체포돼 1920년 해산되고 말았다. 해방 후 공산치하에서 이 교회 청년들은 활발하게 반공투쟁을 전개했다. 6·25전쟁 때는 인민군 병동으로 이용됐고 지하 기도처는 주민들이 학살된 곳으로 전해진다.

옛 교회터 입구 안내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이곳은 철원제일교회의 유적지입니다. 교회예배당은 1936년에 기공해 37년에 완공한 석조건물입니다. 건평 194평으로 1층에 1개의 소예배실과 10개의 분반공부실이 있었으며 2층은 대예배실로 당시로는 아주 큰 예배당이었습니다. (중략) 지금은 한국전쟁으로 예배당의 모습은 사라지고 잔해만 남아 동족상잔의 아픈 역사를 말해주며, 신앙의 순결을 지키려 순교한 성도들의 뜨거운 피가 오늘 우리에게 교훈하는 터전으로 남아있습니다. 이곳은 신앙의 유적지이자 철원군에서 지정한 문화재입니다.”

한은수(예수교대한감리회 웨슬레총회) 감독은 설교에서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지은 죄를 회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일제 통치와 6·25전쟁을 겪은 고난의 역사를 갖고 있는 우리나라와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하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전 총회장 최병두(79) 목사는 우리나라 위정자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최 목사는 “위정자들은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말고 겸손하게 봉사하는 마음으로 나랏일을 해 달라”고 주문했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전 총회장 박정근(82) 목사는 “성장이 둔화된 한국교회가 이 순교의 피로 인해 크게 부흥될 수 있을 것으로 확실히 믿는다”고 기도했다.

전국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 이상형(76) 목사는 “한 핏줄 한 동족끼리 화목하지 못한 죄를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이 목사는 “잘라지고 동강난 휴전선을 이어 달라”며 “아버지여,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입니다. 평화통일을 원하는 우리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옵소서”라고 간구했다.

이날 행사를 준비한 한국기독교원로목회자후원회장 이주태 장로는 “오늘 예배의 의미는 남북 분단의 아픔을 이해하는 데 있다”며 “한국교회의 순교신앙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럴수록 선배목사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행사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철원제일교회는 2002년 근대문화유산 제23호로 지정돼 관리되고 있다. 무너진 교회가 문화유산으로 보존되는 이유는 이곳이 3·1운동의 역사성을 지니고 6·25전쟁 당시 기독 청년들의 반공투쟁의 산실이기 때문이다. 폐허로 남은 교회터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그런 무언의 감동과 의미를 전하고 있다.

철원=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