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국 잇단 초청받은 실험미술 개척자 김구림 “한국 첫 전위영화 세계무대서 인정받아”

입력 2015-08-12 02:46
김구림 작가는 10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릴 페스티벌은 각국 도시를 위주로 그 도시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이벤트”라며 “최정화, 서도호, 이불 등 중진 작가들도 초대받았는데 젊은 그들과 함께 가니 더욱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최초의 실험영화 ‘24분의 1초의 의미’ 영상.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구림(79).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 아방가르드 예술의 산실 ‘AG그룹’과 ‘제4집단’을 이끌며 퍼포먼스와 실험영화, 대지미술 등 파격적인 현대미술을 선보였던 한국의 전위예술 1세대다. 그의 작품 세계가 영국 프랑스 중국 등 국제무대에서 새삼 주목받고 있다.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의 스타오디토리움 극장에선 다음 달 18일부터 3일간 그의 1969년 작 ‘24분의 1초의 의미’가 상영된다. 한국 최초의 실험영화로 기록되는 이 작품은 프랑스 릴의 ‘릴3000페스티벌’에서 오는 10월 16일부터 3일간 서울이라는 도시를 집중 조명하는 행사에도 초대됐다. 해외 일정 준비로 바쁜 그를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에서 만났다.

김 작가는 “테이트모던 행사는 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의 실험영화를 소개하는 자리”라며 “영화인을 제치고 미술인의 작품이 한국 첫 전위영화의 타이틀로 세계무대에서 공인받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영상은 10분짜리 16㎜ 필름에 1960년대 후반 삼일고가도로, 세운상가 등 도시공간을 배경으로 현대인의 권태를 담았다.

작가 자신도 배우로 등장한다. 당시 영화관이 아닌 뮤직홀에서 소개됐으며 흰색 스크린이 아닌 흰옷을 입은 작가의 몸에 영상이 투사되는 등 기존 틀을 전복시켜 문화계에 화제를 몰고 왔다. 신상옥 감독 같은 대가나 나오는 영화잡지에 신참내기인 그의 작품이 ‘한국에도 전위영화 폭풍’ 등의 제목으로 대서특필됐다고 한다. 그는 “하지만 영화인들의 반감을 사 편집할 사람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혼자 기술을 습득해 모텔에서 영상을 편집해야했다”고 회고했다.

국립현대미술관 강승완 학예실장은 “유럽이 아시아현대미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맥락에서 각국의 현대미술 개척자들이 주목받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김 작가의 힘은 과거에 머물지 않고 팔순에도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현역 작가라는 데 있다. 중국 시안시립미술관이 9월 11일부터 한 달간 ‘동북아시아 지역사와 시대정신’이라는 부제로 ‘9817711전’을 열면서 개막식 퍼포먼스 작가로 그를 초청한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생성에서 소멸로’라는 제목의 신작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전시에는 행위예술가 성능경 등 다수의 한국 작가들이 참여한다.

김 작가는 퍼포먼스, 전자미술, 대지미술 등 전위미술뿐만 아니라 판화와 회화, 현대무용, 무대의상에 이르기까지 광폭행보를 벌여 왔다. “대학 정규 교육을 박차고 나와서 그런지 오히려 틀에 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는 게 그의 변이다. 유럽 일정에 앞서 다음 달 4일부터 서울 종로구 OCI미술관에서 40대 김영성 작가와 함께 2인전도 갖는다.

글·사진=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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