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대구 정은희 사건’ 恨만 남았다… 항소심도 스리랑카인 무죄 선고

입력 2015-08-12 02:44

17년 전 발생한 ‘대구 정은희(당시 18세·대학생)양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 K씨(49)에게 항소심 재판부도 무죄를 선고해 이 사건은 영구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커졌다. 검찰은 핵심증인을 찾았다며 유죄를 자신했지만 헛수고만 한 셈이 됐다.

대구고법 제1형사부(부장판사 이범균)는 11일 정양을 성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은 혐의(특수강도강간)로 기소된 K씨의 항소심 선고공판에서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범으로 지목된 D씨로부터 범행 내용을 전해 들었다는 새 증인과 기존 증인들의 진술에 차이가 있고 새 증인의 진술도 신빙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정양 속옷에서 발견된 정액 유전자가 피고인 것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는 결과 등으로 볼 때 피고인이 공범들과 함께 피해자를 강간했을 가능성이 있지만 이 부분은 공소시효(10년)가 끝났다”고 덧붙였다.

정 양은 1998년 10월 17일 새벽 대학 축제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정양이 대구 구마고속도로에서 25t 덤프트럭에 치여 숨졌다. 당시 사고현장에서 30여m 떨어진 곳에서 정양의 속옷이 발견됐지만 경찰은 단순 교통사고로만 처리했다.

정양 유족들은 2013년 초 청와대 등에 탄원서를 내는 등 재수사 요구를 했다. 같은 해 6월 대구지검은 K씨가 성매매 권유 혐의로 경찰에 검거(2011년)될 때 채취한 DNA가 정양 속옷에서 검출된 DNA와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K씨는 공범 2명과 함께 정양을 성폭행한 혐의로 같은해 9월 구속 기소됐다. 공범 2명은 2001년과 2005년에 각각 고국으로 돌아가 기소 중지됐다. 지난해 초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15년 만에 유족들이 한을 풀었다”고 검찰에 힘을 실어줬지만 K씨는 1심에서 증거 부족으로 무죄를 선고 받았다.

검찰은 지난해 6월 항소했고 올해 초 K씨 일행이 정양을 만난 상황, 성폭행을 위해 이동한 경로·방법, 공범이 정양의 가방에서 학생증 등 소지품을 훔친 내용 등 당시 상황을 공범 D씨에게 자세히 들었다는 새 증인을 찾았다.

검찰은 전담팀을 구성하고 공소장을 변경하며 공소시효가 남아 있는 특수강도강간(15년) 혐의 입증에 주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검찰은 상고하기로 했지만 무죄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양의 아버지 정현조(68)씨는 “1심 때와 마찬가지로 무죄가 나올 줄 예상하고 있었다”며 “검찰이 경찰의 잘못된 수사내용에 맞춰 수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또 “고소 문제로 밝힐 수는 없지만 다른 범인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