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김종걸] 도요타에서 배워야 할 것

입력 2015-08-12 02:20

고용 안정과 고(高)성과가 같이 실현되는 기업을 꼽으라면 바로 도요타자동차다. 이 회사는 한마디로 ‘진화하는 자율적 병영(兵營)기업’으로 표현할 수 있다. 자율적이란 현장 근로자에게 상당한 권한이 이양되어 있는 것을, 병영이란 사람과 기계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연동되어 있는 것을, 진화란 이 시스템이 상황에 맞게 계속 발전했던 것을 의미한다. 지난 일본의 장기 불황 과정에서도 도요타는 성공을 거듭했고, 생산량 기준 세계 최대 자동차 기업으로 부상했다. 생산 과정의 모든 낭비 요소를 없앤 유연생산 방식, 즉 도요타 시스템 때문이다.

그러나 경영자에게 ‘낭비’는 근로자에게는 ‘여유’일 수도 있다. 그만큼 노동 강도는 세다. 예를 들어보자. 도요타의 작업 과정을 조사한 한 연구에 의하면 부품 세정 작업을 하던 근로자가 8시간 기준 총 2만1367보 걸은 것으로 되어 있다. 성인 한 사람의 보폭을 70㎝에서 1m로 본다면 매일 15∼21㎞를 걷는 것이다. 그것도 빈손이 아니다. 부품과 공구 약 15㎏을 든 상태에서의 이동거리다. 그 외에도 다양한 공정에서의 기능 습득, 품질에 대한 책임, 설비의 보전, 개선의 참여 등 근로자에게 요구되는 의무는 과중하다. 그런데도 왜 이 시스템은 잘 유지되는 것일까.

첫째는 고용 보장의 역사 때문이다. 계속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 도요타도 1950년 전 직원의 25%를 정리해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극심한 노동쟁의도 경험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이젠 두번 다시 해고와 노동쟁의를 거듭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나타난다. 고용 안정이 최우선이라는 가치는 도요타 구성원의 암묵적 약속이며, 지난 60여년도 넘게 그것을 실현시켜 왔다는 역사적 경험 또한 중요하다.

둘째는 이윤 배분이다. 도요타자동차의 직원 연봉은 닛산 등 타 기업에 비해 5∼10% 많다. 물론 성과급, 직무급 등 임금제도 개혁도 꾸준히 실현되어 왔다. 그런데도 고임금인 것은 변함이 없다. 직원 처우가 좋은 회사일수록 경영 성과도 좋게 나타난다는 이론이 있다. 노동경제학에서는 이것을 ‘효율적 임금가설’이라고 하며 다양한 실증 결과가 축적되어 있다. 도요타는 이것을 증명하는 중요한 사례인 것이다. 셋째는 철저한 노사 간 대화다. 300여명의 노사 대표 전원이 참석하는 노사협의회(연 4회), 경영진과 노조 간부진의 정기 간담회(연 3회), ○○위원회 ○○분과회 ○○연구회 등과 같은 다양한 협의 채널이 그물망처럼 연계되어 있다. 대화에 의한 정보 공유와 합의 도출, 이것이 조직에 충성하는 도요타 근로자를 만드는 기반이다.

뜬금없이 남의 나라 이야기를 한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의 노동시장 개혁 이슈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노동시장 개혁 카드를 꺼내들었다. 명분은 투자 활성화, 청년실업 해소에 있다. 근거는 정규직의 경직성 때문에 투자와 신규 채용이 어렵다는 것이다. 당연히 개혁의 초점은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 임금체계 변혁에 둔다. 그러나 필자는 해고 관련 사항은 아주 조심히 다루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고용 안정은 노사 간 신뢰 형성의 가장 밑바탕에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기업 개혁도 추진해야 한다. 투명한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고 노사 간 대화 채널도 잘 정비되어야 한다. 자칫 개혁이 노동자 쪽에만 한정되었을 경우 이익의 불균형으로 개혁 그 자체가 좌초될 수도 있다.

도요타자동차의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고용 안정, 이윤 배분, 정보 공개 및 노사 합의가 기업의 고성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개혁의 목적이 기업의 성과 증진과 이에 따른 경제 살리기에 있다고 한다면 도요타자동차의 사례는 참고할 만하다.

김종걸(한양대 교수·국제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