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우주만큼 낯선 우즈베키스탄으로!

입력 2015-08-12 00:10

오래 기다렸던 해외봉사단원의 면접 결과가 발표 났다. 2년 동안 해외에서 지내는 일이니 만큼 건강검진부터 신원조회까지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합격만큼이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원하는 지역으로 파견되는 것인데, 어디 인생이 모두 내 뜻대로 흘러간 적이 있던가. A를 원하면 B를 내어주고 B를 원하면 F를 내어주는 게 지금껏 인생이 내게 베푼 아량이었다.

합격자 명단 아래 적힌 파견국 이름을 보고 까무러칠 뻔했다. ‘우즈베키스탄’이라니! 3지망까지 모두 남아메리카를 써낸 데다 얼마 전부터 스페인어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우주만큼 낯선 우즈베키스탄이라니. 아무리 명목이 봉사활동이라지만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들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주변의 반응은 이랬다.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그래서 좀 더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친구들은 “네가 가장 원하는 것이 뭔지 생각해보고 결정해. 남미 가는 게 첫 번째 목적이라면 다시 지원해봐”, 이상적이고 엉뚱한 선택을 잘 하는 친구들은 “원래 원하던 건 아니지만 가봐. 그곳에 또 다른 이야기가 널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라고 말했다.

이틀 동안 앓았다. 처음에는 ‘인생은 언제나 원하는 걸 주지 않아’라며 분노했고 ‘왜 다른 사람들은 원하는 곳에 배정받는 거지’라며 질투했다. 그러다 내가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생각났다. “난 아시아는 관심 없어. 여기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가고 싶어.”

인생은 짓궂은 장난 같다. 내가 한 말을 잘 기억해뒀다가 골탕 먹이려는 심보인가. 그렇다면 나도 의외의 답장을 날려야겠다. ‘가고 싶은 나라’로 가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한국어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로 정말 봉사활동을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했다. 스페인어 책을 잠시 집어넣고 오늘은 러시아어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난 널 응원해”라는 친구들의 문자를 보며 인생이 내게 준 뜻밖의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