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름다운 죽음’ 이야기하며 웃음·눈물이 번갈아…

입력 2015-08-11 02:48
44∼75세 남녀 16명이 10일 서울 영등포구 건강보험공단 영등포남부지사에서 열린 웰다잉 교육 ‘아름답고 존엄한 나의 삶’ 첫 오리엔테이션에 참여해 강의를 듣고 있다. 김지훈 기자

“웰빙(well-being), 웰빙만 외쳤지 더 중요한 웰다잉(well-dying)을 잊고 살았어요. 어차피 죽음이란 종착역으로 가는 건데, 그 마지막을 좀 더 고민해야 할 것 같아서 참석했습니다.”

조현형(75)씨는 자기소개를 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이렇게 말했다. 10일 오후 2시 국민건강보험공단 서울 영등포남부지사 회의실에서 열린 웰다잉 교육 ‘아름답고 존엄한 나의 삶’ 첫 시간에는 조씨를 비롯해 44∼75세 남녀 16명이 모였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과 눈물이 번갈아 번졌다.

◇잘 죽지 못하는 나라=2010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죽음의 질 지수’ 조사에서 한국이 받아든 성적은 초라했다. 40개국 중 32위였다. 지난해 건보공단의 호스피스 인식도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9.5%가 죽음을 생각하면 ‘두려움’부터 느낀다고 했다. 죽음은 ‘생을 마감하는 것’(30.7%), ‘이별로 인한 슬픔과 상실’(26.3%)로 여겨지고 있었다.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최영순 연구위원은 “말기환자를 심리적, 사회적, 영적으로 돌보기보다 육체적 치료에 매달리는 ‘죽음의 의료화’ 현상은 죽음을 ‘극복 대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기 위해 건보공단은 이날부터 6주간 11차례 웰다잉 무료 교육을 진행한다. ‘소중한 사람들’ ‘아름다운 내 삶’ ‘죽음 이해하기’ ‘웰다잉’ ‘존엄 유지를 위한 준비’ 등이 각 수업의 주제다. 죽음을 삶의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여길 수 있게,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돕는 것을 목표로 했다. 건보공단 본부와 영등포남부·마포·강남서부·구로지사에서 모두 200명이 수강한다.

최 연구위원이 진행한 이날 오리엔테이션 수업은 자기소개와 설문지 작성, 레크리에이션으로 꾸려졌다. ‘호스피스 완화의료’ ‘사전의료의향서’ 등의 정확한 의미를 묻고 평소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하기도 했다. 수강생들은 참여하게 된 계기로 가족의 죽음을 꼽았다.

남인자(62·여)씨는 “친정어머니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충격을 받아 죽음을 공부하고 싶어졌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정찬연(55·여)씨는 “부모님을 떠나보내며 죽음을 실감했다. 내가 그런 상황이 됐을 때 절대 병원에 가지 말라고 자녀에게 얘기했는데 받아들이지 못하더라. 젊은 세대도 가치관을 바꾸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죽음 준비 교육도 건강검진처럼 국가가 챙겨야”=20, 30대도 이번 교육에 큰 관심을 보였다. 건보공단은 청년 수강 정원 50명이 모두 찼는데도 수강 문의가 폭주해 정원을 100명으로 늘리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11명의 전문 강사와 연구진의 강의를 듣고 매시간 조금씩 자서전을 기록한다. 노인 전문가인 김용숙 한국백제교육문화원 공동대표는 ‘삶의 과정’ 강의를 맡았다. 김 대표는 “우리는 잘 살기 위한 성장기 교육에만 집중하고 중년 이후 삶에 소홀하다”며 “풍요로운 죽음은 노년에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하면서 ‘준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곱 번째 수업인 ‘죽음의 철학’은 사회복지 전문가 정상기(66)씨가 이끈다. 정씨는 “우리 조상은 삶을 정리하고 사후를 대비하는 여러 활동을 통해 죽음의 이별을 공동체의 축제로 승화시켰다”며 “의연하고 건강하게 죽음을 맞는 태도를 함께 생각해볼 것”이라고 했다.

‘임종 과정에서 나타나는 증상’은 각당복지재단 웰다잉 강사 안덕희(64·여)씨가 진행한다. 호스피스 병동 간호사 출신인 그는 임종 직전의 증상과 필요한 준비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예정이다. 안씨는 “연명치료 중 맞는 죽음과 호스피스 임종의 차이를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라며 “특히 청년들이 죽음을 ‘나의 일’로 인식하고 준비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마지막 수업에서 수강생들은 유서, 장례 의견서, 사전의료의향서를 직접 작성해보게 된다. 강원웰다잉연구소 최호철 소장은 이 서류를 ‘죽음 준비 3종 세트’라고 부른다. 최 소장은 “연명치료에 뒤따르는 죽음의 물화(物化)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존엄한 죽음의 중요성을 함께 생각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건보공단은 웰다잉 교육의 효과를 평가한 뒤 전 국민 대상의 온·오프라인 교육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최 연구위원은 “국가건강검진처럼 죽음 준비 교육도 건강보험 급여화해서 국가가 보장하는 방안도 장기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전수민 기자 suminis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