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전 11시30분쯤 국회 본관 앞. 당내 회의를 마치고 나오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때마침 이곳을 지나던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마주쳤다. 문 대표는 대뜸 김 대표에게 “정개특위에 재량을 좀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오픈프라이머리(국민공천제) 일괄타결이라는 자신의 제안에 김 대표가 “정개특위에서 논의하자”고 수정 제안하자 나온 말로 해석됐다. 이에 김 대표는 “재량을 주고 있다”고 응수했다. 선거제도 개혁을 둘러싼 두 사람의 신경전은 서로 각기 대기하던 차량에 바로 탑승하면서 짧게 끝났다.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 기준 마련시한(13일)이 코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야는 접점을 못 찾고 있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의원 정수가 정해져야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만들 수 있는데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여야 지도부 눈치만 보는 상태다.
문제는 이 사안이 여야 대표끼리 ‘통 크게’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당 대표이자 대권주자라는 공통점을 지닌 김·문 대표에게 총선은 최대 기회이자 위험요인이다. 따라서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전초전 격인 선거구 획정 협상은 시한을 넘겨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여기에 의원 정수 확대 문제도 난제다.
우선 야당이 제안한 권역별 대표제의 경우 여당 내 유력 경쟁자가 없는 데다 이미 ‘적자(嫡子)’ 이미지를 굳힌 김 대표가 받기 힘든 카드다. 이 제도를 도입할 경우 지역 불균형은 일부 해소되지만 새누리당 과반 의석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정치 컨설팅 업체 시대정신연구소 엄경영 대표는 “김 대표가 총선에서 승리한다면 차기 대권 주자 입지를 완전히 굳히면서 친박 견제로 다소 불안했던 당내 기반도 강화할 수 있지만 패배 시 이런 기대는 실망으로 바뀔 수 있다”고 예상했다.
새정치연합 문 대표에게도 내년 총선은 양날의 칼이다. 승리로 이끌면 유력 대선 후보로 입지를 탄탄히 굳히지만 결과가 안 좋으면 ‘박원순 대망론’ 등이 부각하면서 최대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따라서 당장 신당 움직임에 대비해 ‘집안 단속’을 해야 하는 문 대표 입장으로선 분당파를 설득할 수 있는 권역별 대표제 카드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선 “분당을 막아야 하는 문 대표 측에서 여당이 받기 힘든 요구를 내걸고 신당파를 설득할 시간을 벌고 있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한편 여론조사 전문 업체 리얼미터는 지난 3일부터 7일까지 전국의 19세 이상 유권자 2500명을 대상으로 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김 대표가 지난주보다 3.0% 포인트 상승한 24.2%로 1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문 대표는 박원순 서울시장(15.8%)에 이어 14.4%로 3위를 기록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전주에 비해 각각 4.6% 포인트 오른 39.5%(매우 잘함 12.0%, 잘하는 편 27.5%)를, 새누리당 지지율은 3.4% 포인트 상승한 39.9%로 나타났다.
리얼미터는 “8·14 임시공휴일 지정과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발표가 지지도 상승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주간 집계는 전화면접(CATI) 및 자동응답(ARS) 방식으로 무선전화(50%)와 유선전화(50%) 병행 RDD 방법으로 조사했고,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0% 포인트이다.
한장희 기자 jhhan@kmib.co.kr
선거구 협상 ‘헛바퀴’ 뒤에 숨은 김무성·문재인 대망론
입력 2015-08-11 02: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