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 보듬는 유럽의 ‘선한 사마리아인’들

입력 2015-08-11 02:39
독일의 난민구호단체 ‘레퓨지스 웰컴’은 집을 제공할 수 있는 가정과 난민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난민 모자를 받아들인 독일 한 가정의 모습. 알게마이네차이퉁

영국과 프랑스는 난민들을 상대국에 떠넘기려고 연일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헝가리는 난민을 막기 위해 175㎞ 길이의 차단벽을 설치 중이다. 유럽연합(EU)과 이탈리아, 그리스 등은 지중해 난민 구조에 적극 나서지 않아 올 들어서만 수천명이 바다에 빠져 죽었다. 유럽은 난민에 관한 한 ‘나쁜 대륙’이 돼버렸다. 하지만 각국 정부가 아닌 민간 차원에서는 난민을 돕기 위한 노력이 적잖이 펼쳐지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9일(현지시간) 점점 각박해져가는 세상인심 속에서도 ‘인간애’를 잃지 않은 사람냄새 가득한 풍경들을 소개했다.

그리스 레스보스 섬의 에릭 켐슨씨 부부는 난민들이 도착하면 제일 먼저 달려간다. 기증받은 마른 옷가지와 간단한 먹거리를 나눠주기 위해서다. 아기가 있는 엄마들에게는 뜨거운 물병을 건네줘 모자가 정상체온을 되찾게 도와준다.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메린다 멕로스티씨는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하루 150명 정도의 난민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근처에는 ‘모두의 마을’이라는 민간 난민수용소도 설치됐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그리스지만 사람에 대한 온정은 여전히 남아 있다.

프랑스 파리의 이사벨 페뱅(56)씨는 올해 초 아이 2명이 독립하면서 방 2칸이 비게 됐다. 그녀는 난민구호단체인 ‘웰컴 투 프랑스’를 찾아갔다. 거기에서 아프리카 청소년 2명을 소개받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했다. 지난해 이 단체는 페뱅씨와 같은 105가구의 도움을 받아 난민들에게 6200박의 숙박을 제공했다. 비슷한 난민구제 활동이 올해 독일에서도 생겨났다. 20, 30대 청년들이 운영하는 ‘레퓨지스 웰컴’(Refugees Welcome·난민을 환영합니다)이라는 단체는 집을 제공할 수 있는 가정과 난민을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2500명이 난민과 집을 공유하겠다고 나섰다.

스페인의 가브리엘 델가도 신부가 운영하는 ‘티에라 드 코도스(모두의 땅)’는 난민을 범죄자 취급하지 말자는 운동을 펼치고 있다. 중범죄자가 아닌데도 난민수용소에 가둬놓고 모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영국 글래스고의 ‘유니티 센터(연대센터)’ 역시 난민들이 난민 신청을 하는 장소인 내무부 앞에 사무실을 두고, 난민들이 구금되거나 추방될 때 석방 투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서류신청에 도움을 줘 난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난민들이 ‘거쳐 가는’ 나라인 헝가리에서도 ‘미그스졸(난민연대)’이라는 단체를 중심으로 난민 돕기가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단체는 여전히 추웠던 지난 6월 아이가 있는 난민 가족이 밤새 헝가리의 한 역에서 벌벌 떨었다는 사연을 접하고 조직됐다. 난민에게 따뜻한 담요와 차, 옷 등을 제공하고 자원봉사에 나선 의대생들은 응급처치도 해준다. 이 단체가 페이스북에 ‘오늘은 난민들이 많이 와 사과가 부족하네요’라고 올리면 현지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사과를 가져오는 식인데 현지인들도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됐다고 한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