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학·배형규 순교자 ‘십자가의 삶’ 영화로… 두 선교사 자취 담은 ‘순교’ 13일 개봉

입력 2015-08-11 00:45
김영학 목사와 배형규 목사의 삶과 신앙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순교’가 13일 개봉한다. 영화 순교의 스틸.
우리나라 해외 파송 선교사 가운데 최초로 순교한 러시아 선교사 김영학 목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순교한 배형규 목사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순교’가 13일 서울 마포구 필름포럼과 종로구 스폰지하우스에서 개봉한다. ‘잊혀진 가방’(2010) ‘중독’(2013) ‘제자 옥한흠’(2014)을 만든 김상철 감독이 연출했다. 김 감독은 김 목사의 아내 안원정 사모가 남긴 자술서를 최초로 인용했다.

황해도 금천 양반가에서 태어난 김영학(1877∼1933) 목사는 우연히 전도대를 만나 집회에 참가한다. 이 집회에서 복음을 듣고 회개한 그는 이후 권서인(colporteur)이 돼 성경을 등에 지고 다니며 말씀을 전했다. 권서인은 단순히 성경을 파는 이가 아니라 복음 전도자였다.

그는 1911년 전도사의 직분을 맡고 협성신학교 졸업 후 1918년 목사 안수를 받았다. 서울 종교교회와 수표교교회 등에서 담임 목회를 했다. 강원도에서 양양교회를 담임하던 1919년 3·1운동이 전국에서 일어났다. 그는 양양 만세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그가 순회한 교회의 대다수가 만세운동에 참여했다. 그는 만세운동으로 일본 당국에 체포돼 3년 동안 서울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출소한 그는 러시아 선교에 자원했다. 감리교는 1920년대 초반부터 양주삼 목사를 중심으로 만주와 시베리아 선교를 시작했다. 이곳은 일제 박해를 피해 이주한 한인이 많은 곳이었다.

러시아는 당시 공산혁명(1917)이 일어난 지 몇 해 안된 때였다. 극렬 공산주의자들은 “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며 교회를 핍박했다.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9년 동안 한인 교포를 상대로 목회를 했다. 1930년 러시아 공산당은 반동죄로 김 목사를 구금, 배교를 강요했다. 그는 굴복하지 않았고 이듬해 10년 중노동형을 받고 시베리아로 강제 이주, 복역 중 숨졌다. 김 감독은 김영학의 발자취를 따라 러시아 현지 촬영을 했다.

김 감독의 시선은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겨진다. 샘물교회 부목사로 청년부를 담당했던 배형규(1965∼ 2007) 목사는 2007년 7월 한민족복지재단 아프간 단기선교 팀장으로서 분당샘물교회 단기선교팀원들을 이끌고 아프간으로 떠났다. 아프간 가즈니 주에서 이슬람 과격파 탈레반에 피랍돼 일곱 발의 총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통합)는 그를 선교사로 추서, 그는 6·25전쟁 후 가장 최근 순교한 목사로 기록됐다. 영화 중 배형규 목사의 최후 사진과 유품이 나온다.

또 평신도 심성민(1978∼2007)씨도 배 목사와 함께 아프간에서 순교했다. 신앙이 없던 부친을 비롯해 그의 가족은 이 사건 후 하나님을 영접하게 됐다. 영화는 순교가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확인시켜 준다. 김 감독은 “한국교회 선교의 불씨를 되살리고 선교사 파송의 의미를 되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070-7886-3691).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