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의문부호였다. 현역 시절, 조국 독일을 1982 스페인월드컵 준우승으로 이끈 스타플레이어였지만 지도자로써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룬 적 없는 울리 슈틸리케(61) 한국 남자 축구 대표팀 감독에 대한 국내 팬들의 시선이었다. 그러나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데는 채 1년도 걸리지 않았다. 한국은 올 초 호주 아시안컵 준우승에 이어 9일 7년 만에 2015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선수권대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슈틸리케 감독의 지도력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FIFA 랭킹 69위→54위…슈틸리케 만 11개월이 남긴 기록=지난해 9월 슈틸리케 감독 부임 당시 한국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63위였다. 홍명보 감독 때 저조한 성적으로 아시안컵 개막 직전이던 지난 1월에는 역대 최저인 69위까지 추락했다.
그로부터 11개월이 지난 10일 현재 한국의 FIFA 랭킹 54위다. 슈틸리케호의 첫 국제 대회였던 아시안컵 준우승으로 2월 순위가 단번에 54위로 상승했다. 6월 아랍에미리트(UAE)와의 평가전과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미얀마전에서 연달아 승리하며 지난달에는 52위까지 순위가 올랐다. 슈틸리케호는 출범 이후 12승 3무 3패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날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동아시안컵에서 두 가지 소득을 얻었다”면서 “첫 번째는 선수들의 개성을 잘 살리고 장점을 발휘한 것, 두 번째는 상대로부터 존중을 받은 것이다. 상대가 우리에 맞춰서 대응했고 지금까지의 대표팀 성적을 보면 그럴 자격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숨은 진주 찾기’ 마침내 결실=슈틸리케 감독의 재임기간은 한국 축구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시간이었다. 기존 대표팀의 구성은 유럽파 중심에 나머지 자리를 일본과 중국, 국내파가 차지하는 식이었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선발의 주된 기준으로 ‘리그 활약도’를 내세웠다. 이름값은 버리고 실리를 택한 것이다.
그동안 외면 받아왔던 중동 리그에도 눈길을 돌렸다. 카타르 프로팀 감독도 역임했던 슈틸리케 감독은 남태희(24·레퀴야)를 비롯해 곽태휘(34·알 힐랄), 이명주(25·알 아인), 한국영(25·카타르SC) 등 모래 속에서 자칫 빛을 잃을 뻔한 보석들을 한국 축구 중심으로 이끌었다. 이들은 모두 아시안컵에서 큰 역할을 했다.
숨은 진주 찾기는 K리그에서도 이어졌다. 슈틸리케 감독은 주말마다 국내 경기를 보러 다녔다. K리그 클래식뿐 아니라 챌린지, 대학리그는 물론 유소년 축구까지 꼼꼼히 챙겨봤다. 지금까지 그가 A매치에 처음 발탁한 11명 중 9명이 K리그 선수다. A매치에 데뷔한 이들 중 4명은 데뷔 골로 슈틸리케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지난 35년간 한국 축구 역사상 단 30명뿐이었던 A매치 데뷔전 골의 주인공을 슈틸리케 감독은 부임 1년도 안돼 4명이나 키워냈다. 두꺼워진 선수 층은 덤이다.
“대회에서 우승을 하려면 11명의 (선발) 선수들로만 가능한 게 아니다. (후보를 포함한) 23명 모두 중요하고 이들 모두 활용해야 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이 줄곧 강조하고 있는 축구 철학이다. 슈틸리케호는 점점 진정한 ‘원(One) 팀’이 돼 가고 있다.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슈틸리케호 동아시안컵 우승] K리그 모래밭서 ‘숨은 진주’를 찾다
입력 2015-08-11 02:55 수정 2015-08-11 18: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