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의구] 임기 중반, 어려운 개혁

입력 2015-08-11 00:30

의약 분업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2000년은 의료계 파업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의사는 처방전을 쓰고 약사는 처방전에 따른 약만 조제하도록 역할을 분담시켜 약의 오남용을 막자는 의약 분업은 ‘의료 혁명’이라 불릴 정도로 굵직한 개혁 이슈였다. 하지만 의료계와 약계의 저항이 거셌다. 관련 약사법 개정이 1994년 이뤄져 1999년 7월 7일 이전에 의약 분업을 실시하도록 돼 있었지만, 98년 12월 의약업 단체들이 국회에 청원을 내 시행이 1년 연기됐다. 99년 9월 어렵게 시행방안이 확정되고 12월에야 개정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의료계는 2000년 6월 이후 3차례 휴폐업 투쟁을 전개했다. 전국 2만여 병·의원 중 70% 이상이 참여했고, 전공의에 이어 의대교수들까지 파업에 동참해 의료대란이 빚어졌다. 국민들은 감기에 걸려도 병원에 들러야 처방전을 받을 수 있는 불편을 겪었고, 의보수가도 올라 이중고를 겪었다. 그렇지만 당시 김대중정부는 계도기간을 거쳐 8월 1일 의약 분업을 강행했다.

15년이 지난 이제 국민들은 병원과 약국을 들러야 하는 일을 불편하게 느끼지 않게 돼 개혁이 민생의 일상으로 뿌리를 내렸다. 하지만 그때 의료 파동은 의·약·정 3자가 합의안을 도출한 12월까지 6개월간이나 계속됐다. 의료계 파업으로 소란스럽던 와중에 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의 한 중견 의원은 “개혁은 정권 초반에 해야 한다. 후반에는 초반에 뿌린 개혁의 씨앗들을 잘 가꾸고 관리하는 게 최선”이라는 지론을 펴기도 했다. 당시는 김대중정부의 집권 2년6개월 된 때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6일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것도 임기 절반을 눈앞에 둔 시점이다. 박 대통령은 노동·공공·교육·금융 개혁을 역설했다. 대통령은 앞으로 3∼4년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할 분수령이 될 것이라면서 우리나라가 세계경제의 주역으로 재도약하려면 경제 전반에 대한 대수술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개혁의 길은 국민 여러분에게 힘든 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와 후손들을 위해서 반드시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라고 호소했다.

임기 중반의 개혁은 힘들다. 후반으로 가면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이해집단의 반발을 돌파할 동력이 없어 나라만 혼란스러워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개혁이라면 집단 이기주의의 저항이 아무리 거세도 해야 한다. 시급한 개혁이라면 시점을 따질 수 없고,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박 대통령이 특히 강조한 노동이나 공공 부문 개혁은 국민 공감대가 높은 부분이다. 반면 이해집단의 벽도 높다. 자칫 소란 끝에 개혁이 좌초되고, 정부의 힘이 빠져 작은 개혁도 못하게 될 수 있다. 의약 분업 당시 김대중정부는 6·15 남북 정상회담으로 큰 동력을 축적했었다. 하지만 의료 개혁으로 힘이 소진됐고 임기 말에는 측근 비리 때문에 국민의 지지를 잃었다. 박근혜정부의 형편은 더 어렵다. 세월호 사건 이후 지지율이 눈에 띄게 떨어졌고 공직자들은 추진력이 반감됐다. 내년 4월 총선까지 앞두고 있어 이해집단의 ‘벌집’을 건드리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임기중반 개혁을 이끌려면 소통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그것이 약해진 국정동력을 보완할 최상의 방법이자 대의명분을 뒷받침할 강한 추동력이 될 것이다. 비록 접점 도출에 실패하더라도 전체 국민은 노고를 평가할 것이고 이는 국정을 유지하는 힘이 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 고가도로 철거 과정에서 주변 상인들을 설득하기 위해 발로 뛰었던 일화는 지금도 모범사례로 회자된다. 현 정부도 행정부와 정치권, 필요하면 대통령이 직접 당사자 설득에 나서는 지난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김의구 편집국 부국장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