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전환하겠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해 8월 27일 취임 첫 기자간담회에서 ‘폭탄선언’을 했다. 대입 정책에 귀를 쫑긋 세우던 학교와 학원가에 예고 없이 날아든 ‘빅뉴스’였다. 당시 교육부의 대입 담당 실무자는 서울 출장 중 이 소식을 접하고 경악했다고 한다.
유력 정치인 출신의 교육부 장관은 이렇게 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며 데뷔했다. 고등교육 쪽에서도 행보는 거침없었다. 최대 이슈인 대학 구조개혁은 입학정원을 줄이는 방식에서 대학 교육의 수요 창출 쪽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황 부총리는 노련한 정치인답게 큰 파열음 없이 업무를 수행한다는 평가와 민감한 사안은 ‘어물쩍’ 넘어간다는 비판을 함께 받고 있다. 7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황 부총리를 만나 지난 1년과 앞으로 계획을 들었다. 그는 현재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가 너무 많다고 했다. 알기 쉬운 수학, 배우기 쉬운 수학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 구조개혁의 핵심으로는 ‘교육과 직업의 연계’를 꼽았다.
-지난 1년의 소회는.
“교육부 장관 임기가 평균 1년이었다는데 ‘(역대 장관들 임기가) 이렇게 짧았나’란 생각이 들 정도로 빠르게 지나갔다. 종전 교육은 우리를 선진국 대열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여러 문제를 낳았다.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낳지 않는다. 이혼도, 자살도 많다. 행복을 놓치고 있었다. 자유학기제는 새 패러다임이 시작됐다는 걸 보여준다. 어려서부터 직업을 생각하도록 한다. 직업은 인생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현장이다. 단순히 먹고사는 수단이 아니라 자신의 정신을 불어넣는 사명이며 소명이다. 중학교 때 다양한 진로를 체험시키고, 고등학교 때 직업교육을 시작하고 대학에서 심화된다. 자유학기제와 대학 구조개혁, 두 마디로 요약되는 교육의 전환을 준비한 1년이었다.”
-영어처럼 수학도 수능에서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영어는 ‘더 이상 이렇게 가르쳐선 안 된다’는 확신이 있었다. 제가 영어에 한이 맺힌 사람이다(웃음). 독일어를 공부할 때 독일 사람에게 배웠는데 가르치는 방식이 달랐다. 교육은 기본적으로 절대평가여야 한다. 단, 수학까지 당장 절대평가로 하면 큰 진통을 겪으므로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우선 수학은 ‘수포자’가 너무 많다. 수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다. 전 세계가 수학이라는 학문을 요구하는데 우리도 수학 교육의 혁신이 있어야 한다. 현재 단계에선 쉬운 수학이다. 알기 쉬운 수학, 배우기 쉬운 수학이다. 내용을 적게 가르치는 게 아니다. 게임이나 퀴즈처럼 문제를 풀었을 때 쾌감을 주는 수학이어야 한다. 다른 공부하다 머리 아프면 수학책을 펴놓고 퀴즈 풀 듯 공부하는 과목이 돼야 한다.
지금 수학을 가르치는 방식에 문제가 많다. 평가도 문제다. 문제를 내서 반 아이들이 다 맞히면 다 100점을 줘야 한다. 당장 하자는 건 아니다(웃음). 일단 영어 절대평가가 성공리에 정착하면 자연스럽게 국민들이 ‘교육부 장관은 왜 수학 절대평가를 안 하는가’라는 말이 나올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여부가 다음달 결론이 난다. ‘국정화’ 쪽으로 기운 듯한데.
“한국사는 과거와 달리 수능 필수과목이다. 그런데 교과서를 보면 을사조약도 있고 을사늑약도 있고 안 가르치는 교과서도 있다. 이런 교과서를 가지고 어떻게 수능 시험을 보겠는가. 국민이 존경하고 신뢰할 수 있는 역사가가 제대로 만들면 된다. 그런 분이 심혈을 기울여서 삼국사기, 삼국유사를 쓰듯 하나 써줬으면 하는 걸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민족적 자긍심을 가지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그런 교과서가 나오면 나머지 형식 논쟁은 크게 봐서는 본질적인 건 아니다. 프레임 논쟁에 빠지면 답이 없다.”
-교육 수요 창출이라는 대학 구조개혁의 방향을 계속 견지할 생각인가.
“입학 정원을 줄이는 개혁이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다만 대학을 문 닫게만 하면 교수들은 어디로 가는가. 경제·문화적으로 함몰되는 지역사회는 어쩔 건가. 입학 자원이 줄어드는 게 원인이라면 다른 방법도 한번 찾아보자는 뜻이다. 공적개발원조(ODA)는 그동안 해외에 건물 지어주는 등 시설 자금으로 썼다. 이 돈으로 유학생을 받아 한국에서 교육할 수 있다. 농기계 만드는 기술, 지붕 고치는 기술 같은 건 우리가 넉넉히 넘겨줄 수 있는 경험이고 지식이다. 더 공부하고 싶은 이들은 자비 유학생으로 받을 수도 있다. 우리 대학에 입학하는 유학생의 가족에게 일자리를 주면 된다. 산업연수생 쿼터 내에서 준다면 사회적 논란도 없을 것이다. 이는 부처 간 협의가 끝난 상태다. 해외 교포도 얼마든지 끌어들일 수 있다. 사내 대학 등의 성인교육 수요를 대학으로 돌릴 수 있다. 구태여 대학 문을 닫게 할 필요가 있는가.”
-학과 구조개편으로 대학 사회가 시끄러운데.
“앞서 이야기한 것은 양적인 구조조정이다. 더 중요한 것이 질적 개혁이다. 지금 대학들은 중세 르네상스시대에 머물러 있다. 실험·실습실이 필요 없는 문과 계열만 만들어놓고 등록금 나오면 학교가 유지되는 식이다. 사회의 인력 수요에 맞춰 대학에서 인재가 배출돼야 한다. 정부가 산업 수요를 측정해서 주면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고 필요한 돈을 정부가 지원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인문학 위축을 방지하기 위해 2000억원 규모의 지원책도 만들고 있다. 똑같은 것이라도 이야깃거리가 있으면 부가가치가 달라진다. 셰익스피어의 고향에 갔더니 모든 게 두 배였다. 접시는 몇 배 비쌌다. 그거 하나 사려고 줄을 선다. 이처럼 인문학은 어마어마한 부가가치가 나오는 곳이다. 단, 당장 청년 취업이 급하니까 (산업수요와 대학교육의) 미스매치를 줄여야 한다. 지역 대학들은 지역 산업수요에 맞춰 가르쳐야 한다. 대학 교육과 직업을 연계하는 것이 구조조정의 핵심이다.”
-교육 현장뿐 아니라 사회 전반이 ‘다문화화(化)’라는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우리 대학을 한번 보자. 고교를 막 졸업한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으로만 인식한다. 다양성을 놓친 것이다. 대학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이 들어와야 학문이 풍성해진다. 아프리카, 중남미, 중동 등 다른 문화적 배경을 쏟아 넣으면 거기서 학문이 발전한다. 피카소는 스페인에서 태어났다. 유럽과 아프리카가 만나는 곳이다. 또 남미 예술에는 인디오 문화가 접목돼 스페인보다 ‘플러스알파’가 있다. 이렇게 융복합되면 놀라운 예술이 나오듯 학문도 그렇다.
초·중·고교도 마찬가지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 핵심은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점이다. 김연아에게 수영 못한다고, 박태환에게 스케이트 못한다고 탓하면 안 된다. 부정하거나 배타적인 태도는 큰 문젯거리를 만든다. 우리 문화에 자신감을 갖고 다문화를 넉넉하게 받아들이면서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건 우리 좋은 점으로 덮어버릴 수 있다. 무지개 같은 교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의 꽃이 만개한 꽃밭과 같은 교실을 만들어 나가는 건 선생님들 의지에 달렸다.”
-학교 현장의 성추행·성희롱 피해자가 교육부에 직접 신고하는 방안을 내놓았는데.
“교육부가 모든 조사를 다 할 수는 없다. 교육부가 직접 조사하듯 철저히 하지 않으면 조사 담당자들이 징계를 받게 될 것이다. 대검에서 수사를 일선으로 내려 보내면 일선에선 대검에서 수사하듯 한다. (교육부가 교육청으로, 교육청은 학교로) 내려 보내고 ‘우리는 할 일 다 했다’는 방식이 아니라 위에서 그 과정을 지켜볼 것이다.”세종=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인터뷰]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수포 학생 너무 많아… 게임처럼 쾌감 주는 수학 돼야”
입력 2015-08-11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