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테루 다니구치(86)씨는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피폭되고도 살아남은 생존자다. 당시 16세의 나이로 우체국에서 일하던 다니구치는 방사선에 노출돼 등에 심한 화상을 입고 후송됐다. 갈비뼈가 녹아내리고, 피부에 구멍이 나서 심장과 장기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부상이 심했다. 등은 헝겊조각처럼 너덜거려 수년간 침대에 바로 누울 수조차 없었다. 1946년 1월 미 해군 사진작가 조 오도넌이 촬영한 다니구치의 부상 치료 사진은 이후 나가사키 원자폭탄 박물관에 전시돼 당시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니구치는 4년간 치료를 받은 끝에 퇴원했지만 몸은 엉망이었다. 3개만 남은 갈비뼈는 안으로 오그라들며 폐를 압박해 숨을 쉬기 어렵게 한다. 왼쪽 팔은 화상으로 파괴된 피부조직 때문에 제대로 뻗을 수 없다. 지금도 매일 부인이 상처 부위에 크림을 발라주지만 피부가 찢어질 것 같은 고통을 안고 산다.
이후 그는 평생을 원폭 피해의 심각성을 알리고 핵무기를 추방하는 운동에 헌신했다. 만신창이가 된 그의 몸을 낯선 기자들에게 내보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나가사키 원폭 생존자 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그런 다니구치 회장이 지난 9일 나가사키에서 열린 원폭 투하 70주년 기념식장에서 집단자위권 법제화를 추진하는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질타했다고 캐나다 언론 내셔널 포스트가 보도했다. 다니구치 회장은 “아베 정부가 추진하는 안보 관련법은 원폭 피해가 더 이상 없기를 바라는 나가사키 생존자들의 바람을 무시하고 핵 폐기 운동을 위험에 빠뜨릴 소지가 있다”며 “우리(원폭 피해 생존자들)는 이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다니구치 회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헌법은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하지 않고 무기를 가지지도 않겠다고 세계에 약속하도록 했다”며 “하지만 지금 정부는 다시 이 나라를 전쟁 당시로 후퇴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행사장에는 아베 총리도 참석해 있었다. 아베 총리는 그러나 다니구치 회장의 연설을 지켜보면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고 내셔널 포스트는 전했다.
다니구치 회장은 영국의 인디펜던트와도 인터뷰를 갖고 “원폭 피해는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기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인디펜던트는 그가 고령과 폐렴 때문에 기력이 약해졌지만 윗옷을 벗고 자신의 상처를 내보이며 원폭 피해의 참상을 증언했다고 전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전쟁시대로 되돌리는 개헌 안돼”… 원폭 피해자 호소에도 눈 감은 아베
입력 2015-08-11 0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