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에는 시대가 담겨 있다. 그 무렵 유행이 뭔지, 생활상은 어떤지, 사람들의 관심사는 무엇이며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최근 들어 이런 경향이 더 짙어졌다. 만화가 ‘원 소스 멀티 유스’(One Source Multi Use)의 대표적인 창작물이 되면서부터다. 만화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영화, 광고가 넘쳐나고 한류의 선봉에까지 섰다.
만화가 보여주는 시대의 흐름을 한번에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올해로 18살을 맞은 부천국제만화축제다. 12일부터 5일 동안 경기도 부천시 일대에서 펼쳐진다. 광복 이후 70년 동안 만화가 그렸던 세상과 다가올 30년에 대한 전망을 담았다.
◇‘과거’라는 거울 앞에 서다=만화를 꺼내보는 것은 우리의 과거를 되짚어보는 일이다. 과거에 비춰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기도 한다. 이번 만화축제가 선택한 특별전은 ‘짐승의 시간: 김근태, 남영동 22일간의 기록’(박건웅)이다. 고(故) 김근태 전 의원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당했던 1985년 9월의 기록이다.
만화의 한 대목을 옮겨오자면 이렇다. “그는 끊임없이 계속되는 비명 소리에도 어떤 종류의 연대의식이나 동정을 갖지는 못했습니다. (중략) 마음속으로나마 위로와 격려의 말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는 그게 정말로 안됐습니다. ‘밤새도록 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전 의원이 어떻게 짐승 같은 시간을 보내고 견뎌냈는지, 국가 폭력과 고문이 어떻게 한 사람을 망가뜨릴 수 있는지를 판화 스타일의 흑백 만화로 그려냈다. 작품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재연한 특별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한국의 ‘슈퍼히어로’들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다. 1950∼70년대 만화에 등장했던 슈퍼히어로들이 우리의 힘들었던 삶을 어떻게 위로했는지를 보여준다. 각시탈(허영만), 홍길동(신동우), 황금가면(김종래), 라이파이(김산호) 등이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전쟁과 가족’ 기획전도 열린다. 일제강점기의 아픔, 6·25가 남긴 상처, 도시화와 산업화를 겪으며 희생당한 개인과 가족의 전쟁 같은 삶을 그린 작품들이 걸린다. ‘곱게 자란 자식’(이무기 작가), ‘노근리 이야기’(박건웅), ‘인천상륙작전’(윤태호), ‘소녀 이야기’(김준기) 등이 전시된다.
◇만화가 보여주는 오늘과 내일=미래를 예측하고 오늘을 풍자하는 만화들도 전시된다. 전시 제목은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사이’다. 15명의 작가가 유토피아가 될 수도, 디스토피아가 될 수도 있는 미래 사회를 그렸다.
만화 전시가 보통 디지털 원고를 출력해 걸어 두는 것과 달리 이번 주제전은 작품을 모니터에 투사해 보여준다. 멀티비전 6개에 메인 스토리가 흐르고, 별도의 모니터를 통해 개별 작품을 볼 수 있다. 주로 나노 기술의 발달에 따른 생명연장과 인공지능, 미래의 가족상과 빈부격차 등을 다룬 작품들이다. 권혁주, 들개이빨, 홍승우, 억수씨, 지강민, 이현세, 윤태호, 양영순 등이 참가했다.
일본작가 마스다 미리의 작품들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온갖 문제들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애인도 없고, 안정된 노후를 보장할 경제력도 없는 ‘수짱’의 이야기는 한국을 사는 젊은이들에게도 깊은 공감을 끌어내고 있다. 큐레이터 강은주는 “전시에는 비정규직, 노령화, 여성들의 경력단절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담겨 있다”며 “찬사도 충고도 공감과 이해만큼 나를 위로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마스다 미리의 작품 ‘수짱의 공감일기’도 이번 축제에서 만날 수 있다.
70살이 된 ‘무민 시리즈’도 전시된다.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은 북유럽 설화에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존재 무민트롤을 귀여운 캐릭터로 만들었다. 환상적이고 동화적인 이야기로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이 됐다. 무민 시리즈는 최근 국내에서 북유럽 열풍이 불면서 캐릭터 상품이 인기를 모으면서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프랑스 파리에서 12명이 숨진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만화도 초청됐다. 이 사건 이후 표현의 자유는 전적으로 존중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특정 종교에 대한 비난과 혐오를 경계하고 표현의 자유도 한계가 필요한지를 성찰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가자 부천으로! 신나는 5일간의 만화 여행… ‘제18회 부천국제만화축제’ 오늘부터 16일까지
입력 2015-08-12 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