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저지 보이스.’ 팝스타 프랭키 밸리와 포시즌스의 일대기를 그린 음악영화다. 영화도 재미있지만 영화 자체보다 더 재미있는 게 있다. 이스트우드가 이건 내 작품이요 하고 드러내듯 ‘낙관(落款)’을 찍었다는 사실. 영화 중간에 삽입된, 젊은 이스트우드가 등장하는 흑백 TV 서부극 시리즈 ‘로하이드’의 한 장면이 그것이다.
이스트우드는 “히치콕을 흉내 낸 것”이라고 털어놨다. 그처럼 자신이 만든 영화에 반드시 한 컷씩 등장함으로써 ‘낙관을 찍은’ 감독이 앨프리드 히치콕이다. 관객들로서는 ‘저 영감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등장할까’를 찾아보는 것도 히치콕 영화를 보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히치콕과는 다른 방식으로 낙관을 찍는 감독들도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경우 자신의 다른 영화와 관련된 아이템들을 쓰곤 한다. 이를테면 인디애나 존스 시리즈 2편인 ‘마궁의 사원’에는 중국 상하이의 클럽이 나오는데 그 이름이 ‘오비완’이다. 오비완은 그의 히트작 ‘스타워즈’에 나오는 제다이 기사 이름이다.
그런가 하면 스파게티 웨스턴의 비조(鼻祖) 세르지오 레오네는 또 다른 방식의 낙관을 찍곤 했다. 극단적인 클로즈업 숏. 그는 찌푸린 눈이라든가 음식을 가득 넣고 씹는 입 등 얼굴의 한 부분을 화면이 터져나갈 듯 끌어당겨 찍곤 했는데 결국 그런 것이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낙관이 됐다.
김상온(프리랜서·영화라이터)
[영화이야기] (32) 낙관 찍기
입력 2015-08-11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