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페스티벌’이란 이름을 붙인 전도 집회에 LA 단기선교팀이 와주셨다. 이번엔 내과 외과 소아과 한방 등으로 나누어 의료봉사를 펼쳤는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3일간 집회 중 오전 어린이 집회엔 매일 3000여명이 모였고, 저녁 어른 집회에는 5000여명이 모이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몰라떽 학생과 청장년 100여명이 찬양단을 구성해 부른 ‘부흥’이란 찬양은 참석자 모두에게 큰 은혜를 선사했다. 신유의 기적이 일어나고 결신자가 수없이 나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가 몰라떽에 부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해외선교를 많이 다닌 LA 단기선교팀의 K집사님이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다.
“박 선교사님. 이것은 기적입니다. 제가 해외선교 다녀보니 가장 힘든 곳이 이슬람권입니다. 보통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2∼3년이 지나야 친구가 되어 은밀하게 복음을 전해 신앙인으로 만드는데 여긴 한꺼번에 5000여명을 모이게 해 복음을 전하고 ‘예수’ 영화도 상영하다니요. 너무 감격스럽습니다.”
“오랫동안 눈물과 고통, 시련을 이겨내 얻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암살 위기와 폭탄이 터지는 어려움을 기도로 이겨냈어요. 이는 영적싸움에서 승리한 결과입니다.”
밀레니엄 페스티벌의 성공은 방글라데시 곳곳에서 사역하고 있는 기독교 목회자들에게 엄청난 도전을 주었다. 그들은 이슬람성도가 90%인 나라에서 조심스럽게 숨죽이며 사역을 해왔다. 그런데 몰라떽교회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한 후 자신들도 겁내지 말고 복음을 전하자고 다짐했다는 것이다.
3일간의 대집회를 끝내고 선교팀은 미국으로 돌아갔고 몰라떽교회는 성령의 불길이 훨훨 타올랐다. 길에서 성도나 어린이들을 만나면 서로 “할렐루야!”를 외치며 인사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움츠렸던 교회가 활기를 찾고 개종자들이 더 이상 주변의 공격이나 왕따를 경험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여세를 몰아 전도를 더 거세게 해 나갔고 이 때문에 개종자가 점점 늘어났다. 이 사이 이슬람 지도자들은 조용히 우리 모습을 지켜보고만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어떤 방법도 안 통하자 이번에 지역유지와 동네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진정서를 만들어 정보부와 대통령궁 등 정부부처에 보내는 일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드디어 정보부에서 호출이 왔다. 관계자는 내게 바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브라더가 맞으시죠. 당신에 대한 고소장과 진정서가 얼마나 많이 오는 줄 아세요? 종교 활동을 하시려거든 조용히 하시지 왜 그렇게 요란하게 하나요. 이번에는 그냥 넘어 가지만 또 개종시킨다는 진정이 들어오면 그 땐 어쩔 수 없으니 각오하세요.”
그러나 전도는 절제한다고 절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고 복음을 영접하면 성령이 충만해져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된다. 우리 교회 성도들 중 이미 이런 ‘은혜파’가 많은데 내가 말린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나는 방글라데시에 온 이후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무식하리만치 공격적인 선교를 펼쳤다. 그런데 9년여 동안 나의 이런 선교가 갖은 위협과 위험 속에서 지탱되어 왔는데 한계점이 되었던 것 같다.
나는 방글라데시 사역 9년이 넘어선 2003년 8월 11일, 현지 정보부에 바로 체포돼 강제로 추방되었다. 죄목은 ‘주민들을 강제로 개종시켰다’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추방작전은 나의 완강한 저항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몰라떽을 관장하는 경찰서에서 내 추방을 합법화하기 위해 함께 사역하던 14명도 함께 경찰에 고발했다. 정리=김무정 기자 kmj@kmib.co.kr
[역경의 열매] 박천록 (15) 전도집회 성공 후 개종 잇따르자 정부서 압력
입력 2015-08-11 00: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