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을 운영하는 A씨(47)는 지난해 7월 아르바이트생 B씨(22·여)를 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정에서 A씨는 B씨 어머니가 자신의 아내를 협박했다며 피해자 측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하지만 B씨 어머니가 녹음해뒀던 대화 내용을 재판부에 제출하면서 A씨의 거짓 주장은 들통이 났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선고하며 국가가 B씨 등에게 지급한 여비 30만원도 부담하도록 했다.
앞으로 형사재판에서 A씨처럼 억지 주장으로 소송을 지연시키면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사례가 늘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유상범 검사장)는 피고인이 불필요하게 감정을 신청하거나 피해자를 법정에 부르면 소송비용을 함께 부담케 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한다고 9일 밝혔다.
약식기소에 불복해 ‘밑져야 본전’ 식으로 정식재판 청구를 남용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게임장 업주 C씨(49)는 고액 배당 기능이 들어간 게임물을 사용하다 벌금 500만원에 약식기소됐다. 그는 정식 재판을 청구해 불법 게임물을 사용하지 않았으니 감정을 해보자고 우겼다. 감정 결과 C씨는 게임장에서 사용하지도 않은 게임물을 감정 신청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의정부지법은 지난달 벌금에 더해 감정료 450만원도 피고인이 내라고 선고했다. 일선 검찰에서는 앞으로 구형을 통해 재판부에 소송비용 포함 의견을 적극 밝힐 방침이다.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인에게 형을 선고할 때 소송비용을 부담케 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다. 다만 실무에선 잘 쓰이지 않았다. 정당한 피고인의 권리와 악의적인 소송 방해의 경계를 가르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무죄추정 원칙인 형사재판에서 국가가 피고인의 방어권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올 들어 피고인이 소송비용까지 부담한 경우는 현재까지 18차례 1165만원 정도다.
제도가 유명무실하다보니 피고인이 악의적으로 소송을 지연시키는 일이 빈번하다는 게 검찰 측 판단이다. 특히 약식기소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하는 비율은 2010년 처음 10.3%를 기록한 이후 매년 10% 아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피고인이 정식재판을 청구하면 ‘불이익 변경 금지 원칙’에 의해 약식명령보다 높은 형을 선고할 수 없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검찰 관계자는 “소송비용을 적극 부담케 하면 정식재판 청구 남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형사재판은 공짜’라는 인식 변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같은 검찰의 방침이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피고인의 주장을 어디까지 ‘남용’으로 판단해 비용을 부담시킬 것인지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지방변호사회 김한규 회장은 “명명백백하게 잘못을 저지른 피고인이라 하더라도 피해자를 법정에 불러보면 1%의 참작할 여지가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며 “피고인의 정당한 방어권이 위축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운영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형사소송은 검찰과 피고인이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의 주장을 다투는 것”이라며 “결과적으로 피고인이 제대로 변론을 펼치지 못할 수 있어 적절한 방침인지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형사재판은 공짜 아니다” 피고인에 소송비용 물린다… 大檢, 추진에 법조계 논란
입력 2015-08-10 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