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또 ‘호화 휴가’ 떠난 오바마… 즐거우세요?

입력 2015-08-11 02:08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백악관을 떠나 동부 매사추세츠주 대서양 연안의 휴양지 ‘마서스 비니어드(Martha’s Vineyard)’라는 섬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다. 오는 23일 워싱턴으로 돌아오기까지 17일짜리 달콤한 휴식에 들어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재임 중 여름휴가를 가지 않은 2012년을 제외하고 매년 여름 가족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빌 클린턴과 율리시스 그랜트(1822∼1885) 등 전직 대통령 가운데도 재임 중 이 섬에서 여름휴가를 보낸 사람들이 있지만 오바마만큼 이곳을 자주 찾은 대통령은 없었다.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의 휴가를 위해 10에이커(약 4만㎡, 약 1만2000평)의 부지에 방 7개, 화장실 9개에 수영장 테니스장 농구장을 갖춘 별장을 임대했다. 일각에서는 부자 증세를 주창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1200만 달러(약 140억원)짜리 호화 별장에서 값비싼 휴가를 즐기는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도 있다.

이란 핵 합의가 의회에서 부결될 위기에 놓였고, 중산층과 서민들이 호소하는 경제적 어려움이 대선 이슈로 떠올랐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여름휴가를 막지는 못했다. 오히려 그는 당초 일정보다 하루 앞당겨 금요일 오후에 에어포스원(대통령 전용기)을 타고 휴가지로 떠났다.

◇오바마의 단골 휴가지, 마서스 비니어드는 어떤 곳=미 동부 연안에서 세 번째로 큰 섬인 마서스 비니어드는 대서양 해류의 영향으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다. 한여름인 8월 기온은 평균 섭씨 17∼26도로 쾌적하다. 32도를 넘기는 불볕더위는 드물다. 한겨울인 1월에는 영하로 내려가는 날이 많지 않다. 260㎢ 면적에 1만6000여명이 모여 사는 이 섬의 인구는 여름엔 10만명으로 불어날 만큼 피서지로 이름이 높다.

특히 보스턴과 뉴욕, 워싱턴 등 동부 지역 대도시에서 가까워 정치 지도자들과 상류층 인사들이 즐겨 찾는다. 존 케리 국무장관과 조 바이든 부통령도 이곳에 별장이 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도 올 여름 휴가지로 이곳을 선택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클린턴 전 장관은 나란히 이 섬에서 열릴 민주당 관계자의 생일파티에 초청받아 휴가 도중 조우할 가능성이 높다.

오바마 대통령은 골프를 즐기고 가족과 자전거 타기, 하이킹 등으로 휴식을 취하며 현지 레스토랑에서 지인들과 만찬을 갖는 휴가 일정을 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헬기에서 내리자마자 30분 만에 골프장으로 직행했다.

‘마사의 포도원’이란 뜻의 섬 이름은 1602년 영국 탐험가 바톨로뮤 개스놀드(Bartholomew Gasnold)가 붙였다. 그의 장모와 둘째 딸 이름이 ‘마사’였는데 둘 중 누구 이름을 딴 건지는 분명치 않다.

이 섬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촬영한 영화 ‘조스’가 흥행에 성공하면서다. 이후 ‘조스2’, ‘조스: 리벤지’ 등 조스 시리즈가 모두 이 섬을 무대로 제작됐고, 섬 주민들도 엑스트라로 동원됐다. 2005년엔 조스 30주년을 기념하는 ‘조스 축제’가 열렸다.

1999년 여름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를 태운 경비행기가 이 섬에서 추락했다. 함께 타고 있던 부인과 딸 등 일가족이 목숨을 잃어 미국인들이 충격을 받았다. 케네디 대통령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1994년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 집을 갖고 있었다.

마서스 비니어드는 육지에서 11㎞밖에 떨어지지 않았지만 다리가 없기 때문에 비행기나 배를 이용해야 한다. 여름 성수기에는 뉴욕이나 워싱턴에서 비행기를 이용할 수 있고, 뉴욕에서 금요일 오후에 출발했다가 일요일 오후에 마서스 비니어드에서 돌아오는 페리가 운행된다.

◇일반 미국인의 4배나 긴 휴가, 호화 휴가 논란=해마다 꼬박꼬박 마서스 비니어드에서 보내는 대통령의 여름휴가가 지나치게 호화판이라는 비난도 일고 있다. 이란 핵 합의에 대한 의회의 반대가 심하고, 서민들의 체감경기를 끌어올려야 한다는 비판이 이는 등 중대한 국정 현안이 많은데 너무 자주, 너무 오래 워싱턴을 비우는 게 탐탁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부자증세를 주장하는 오바마 대통령이 상류층이 애용하는 마서스 비니어드를 자주 찾는 것도 모순이라는 지적도 있다. 심지어 오바마 가족의 사적인 여행에 국민 세금이 쓰인 것은 부당하다며 이를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보수 성향의 인터넷 매체인 워싱턴프리비컨은 “오바마 대통령의 16일짜리 여름휴가는 평범한 미국인들의 여름휴가일수보다 4배 길고, 연간 휴가일수보다 하루 더 많다”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사법감시’는 “지난해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의 휴가비로 4000만 달러가 집행됐다”며 “이는 대중의 신뢰와 납세자를 기만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2년 공화당 대선 후보로 나섰다가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한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주 지사는 “미국경제가 위기에 처했고, 많은 미국인이 취업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휴가를 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오바마 대통령은 휴가 중에도 일일 보고를 받고, 참모들과 회의를 갖는 등 국정을 챙기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를 위해 수전 라이스 안보보좌관과 발레리 자렛 선임고문이 마서스 비니어드까지 오바마 대통령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백악관에 잔류한 참모들도 수시로 열리는 화상회의에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의 경우 이슬람국가(IS)가 언론인 제임스 폴리를 참수한 직후 오바마 대통령이 휴가 중에도 TV 카메라 앞에 서서 이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대통령의 직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또 역대 대통령들에 비하면 오바마 대통령의 휴가일수가 훨씬 적다고 반박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올해까지 175일의 휴가를 썼는데 재임 중 400여일을 휴가로 보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서스 비니어드는 격리된 섬이어서 경호상 유리하고, 많은 사람이 즐겨 찾는 대중적인 휴양지가 아니어서 평범한 미국인들의 휴가를 방해하지 않는 이점이 있다고 반박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