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나치, 英 공습에도 카리브해로… 美 역대 대통령 휴가 이모저모

입력 2015-08-11 02:10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도 휴가로 물의를 빚은 사람이 적지 않다. 2차대전이라는 전시 상황을 선거에 활용, 3선에 성공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영국이 나치 독일의 공습을 받고 있는데도 카리브해로 열흘짜리 낚시 여행을 떠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제럴드 포드 대통령은 경기 침체기에 콜로라도 스키장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눈총을 받았다.

건국 초기 미국 대통령들은 휴가 가는 날이 1년에 절반을 넘는 경우도 있었다.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는 1798년 황열을 치료하고, 병든 아내를 간호한다는 명목으로 무려 8개월 동안 자리를 비웠다. 의회는 애덤스 대통령의 부재를 이용해 당시 갈등을 빚고 있던 프랑스를 상대로 독자적으로 전쟁을 선포하려고 했다.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도 1805년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 동안 휴가를 떠났다. 역사학자 매튜 핀스커에 따르면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도 재임 기간의 25%가 휴가였다고 한다.

지금과 같은 개념의 대통령 휴가제는 1902년 테디 루스벨트 대통령이 도입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가 참모들과 기자들을 대거 대동하고 고향인 뉴욕의 ‘오이스터베이’로 휴가를 떠나면서 ‘여름 백악관’이라고 이름 붙였기 때문이다. 당시 신문 만평은 ‘백악관은 오이스터베이로 이전한 뒤 가을에 돌아온다’고 묘사했다.

이후 대통령들은 휴가 중에도 업무를 돌본다는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주기 위해 ‘○○백악관’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휴가를 즐겼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플로리다 남단 키웨스트를 ‘리틀 백악관’이라 불렀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해변 별장을 ‘웨스턴 백악관’으로 포장했다.

‘휴식과 회복’을 내걸고 휴가를 떠났지만, 많은 대통령들이 휴가 중에도 업무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대공황기에 취임한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1931년 현대식 리모델링을 마친 전함 애리조나호를 타고 푸에르토리코로 휴가를 떠났지만 그게 실수였다. 군 지휘부는 매일 아침 비행선을 동원해 대통령에게 전달되는 우편물 박스를 갑판 위에 떨어뜨렸다. 후버 대통령은 휴가 초기에는 피로에 찌든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갑판 위에서 매일 체력단련을 하고, 오케스트라 연주가 곁들여진 만찬을 즐기면서 서서히 기력을 회복했다고 한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재임 8년 동안 335일을 캘리포니아 목장에서 보냈다. 레이건 대통령의 휴가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자 부인 낸시 여사는 “대통령은 휴가를 떠나는 게 아니라 근무 환경이 바뀔 뿐”이라고 반박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