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 후손들, ‘한국문화 전도사’ 꿈을 꾸다… 광복 70주년 맞아 CIS 지역 33명 한국어 연수

입력 2015-08-10 02:27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서 온 고려인들이 6일 인천 계양구 경인교대 강의실에서 한국어교사 연수를 받고 있다. 김태형 선임기자
고려인 교사들이 선물로 받은 태극기를 펼쳐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는 모습. 김태형 선임기자
“바다를 볼 수 없는 중앙아시아에서 살면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향 개성의 바닷가에서 물고기 잡던 얘기를 자주 하셨어요. 생전에 고향 나라에서 바다를 보셨다면 좋았을 텐데….”

고려인 3세 최타지야나(56·여)씨는 강원도 양양 낙산해수욕장에 갔던 얘기를 꺼냈다. 5주 동안 ‘부모의 나라’ 한국에서 지낸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을 때다. 최씨는 재외동포재단이 광복 70주년을 맞아 진행 중인 ‘2015 독립국가연합(CIS) 지역 한국어 교사 초청연수’에 참여했다. 지난달 3일 재외동포재단은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등 CIS 지역의 고려인 한국어 교사 33명을 초청했다. 성공적으로 이주·정착한 고려인이 한국문화를 동포사회와 다른 민족에 전하는 데 도움을 주자는 취지다. 최씨는 우즈베키스탄에서 13년째 한국어와 한국사를 가르치고 있다.

최씨 부모는 어릴 때 고향을 떠나 러시아로 갔다. 먹고살 길을 찾아 나선 길은 ‘긴 이별’이 되고 말았다. 일가족은 194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됐다. ‘항상 한국으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다’는 조부모와 부모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리운 고향땅을 밟지 못했다.

최씨는 조부모를 본 적이 없다. 척박한 중앙아시아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일찍 세상을 떠났다. 유랑의 세월이었지만 최씨와 같은 고려인들은 한국의 문화를 잊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씨는 “동포끼리 있을 때는 한국어를 사용하고, 비슷한 농작물을 찾아 한국 음식을 해먹었다”며 “부모에게 배운 한국어를 동포에게 전하고 싶어 교사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오전 인천 계양구 경인교대 인문사회관 강의실에서 ‘한국어 듣기 교수법’ 강의가 있었다. 5주간 진행된 연수의 마지막 수업이었다. 고려인 한국어 교사들은 한 달이 넘는 타지 생활에 지쳐 보였지만 교수가 ‘대장금’ ‘시크릿 가든’ 같은 드라마를 예로 들며 질문을 던지자 앞 다퉈 손을 들었다. 이따금 던지는 교수의 농담에 쉼 없이 웃음이 터져나왔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고려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안드레이(23)씨는 한국과 한국문화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아직 한국어로 말하는 게 서툴지만 열정만큼은 남다르다. 지난해 두 달간 한국에서 어학연수도 했던 그는 K팝에 관심이 많다.

한씨는 “한국어는 배울수록 어렵지만 계속 배우다 보면 한국인의 정신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러시아로 돌아가서도 계속 공부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고려인 동포사회와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전통문화를 배워 할아버지 아버지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싶다”며 “꼭 다시 한국에 오겠다”고 덧붙였다.

인천=홍석호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