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이 3박4일간의 북한 방문을 마치고 8일 귀환했다. 이 여사 일행의 방북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초청으로 이뤄졌다는 점에서 경색된 남북관계에 대화와 화해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김 제1비서는 이 여사를 초청해 놓고 끝내 면담은 하지 않았다. 손님을 초대해 놓고 집주인이 집을 비운 격이다. 아무리 이 여사가 정부 특사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방문했더라도 초청 당사자인 김 제1비서가 이 여사를 외면한 건 예의에 어긋난다. 기껏 “(이 여사의) 이번 방문은 6·15공동선언이 안고 있는 역사적 의미와 생활력을 모두에게 새겨주는 뜻 깊은 계기가 됐다”는 대남선전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 성명을 발표한 게 전부다.
북한 당국이 진정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의도가 있었다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게다. 북한의 성명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김 제1비서를 비롯한 북한 고위 당국자들이 이 여사를 만나 화해의 메시지를 전달했어야 마땅했다. 6·15공동선언을 이끌어낸 전직 대통령의 부인으로서 이 여사는 남북 당국의 메신저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이 이 여사 방북을 당국 간 대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가는 계기로 삼지 않은 것은 매우 유감이다.
설상가상 역주행은 도를 더해가고 있다. 북한은 뜬금없이 오는 광복절을 기해 표준시간을 현재보다 30분 늦춘 ‘평양시간’을 사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도 이승만정부 때 독자적 표준시간을 사용한 적이 있으나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불편함 때문에 다시 지금의 도쿄 표준시간으로 환원한 경험이 있다. 북한의 다른 시간대 사용은 남북의 이질화만 심화시킬 뿐이다. 당장 개성공단의 혼란이 우려된다. 대남 협박 수위도 날로 높아지고 있다. 북한은 전날에 이어 9일에도 이달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연합 군사훈련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중단하지 않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종말을 맞게 될 것이라는 상투적 협박을 되풀이했다.
북한의 호전적 태도 못지않게 남한의 일부 극단적 시각도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새누리당 의원들 사이에서 이 여사 방북에 대해 “관광코스만 돌아보다 왔다. 제대로 준비 안 된 방북을 강행한 김대중재단 관계자들은 참 대책 없는 분들” “93세의 노구를 끌고 안쓰러운 평양 방문”이라는 등의 혹평이 떠돌고 있다. 이는 “이 여사 방북은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깊다”는 당의 입장과도 배치된다. 북한이 대화의 끈을 놓았다고 해서 우리마저 놓는다면 남북관계는 영영 제자리다. 당리당략 차원을 넘어 접근해야 남북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사설] 김정은, 만나지도 않을 이희호 여사 왜 초청했나
입력 2015-08-10 0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