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日 ‘한국 건너뛰기’… 종속변수로 축소하나

입력 2015-08-08 03:14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위안부 기림비 참배. 미국을 방문 중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 할머니가 6일(현지시간) 뉴욕주 낫소카운티 아이젠하워공원에 위치한 위안부 기림비를 참배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이 외교 무대에서 한국을 ‘건너뛰는’ 듯한 모습이 최근 잇달아 감지되고 있다.

일본은 미·일 동맹 강화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면서도 최근엔 중국과도 관계 개선에 나서 격한 갈등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하고 있다. 이러한 외교 전략 틀에 기초한 일본은 과거사 문제로 관계 회복이 쉽지 않은 한국을 ‘종속 변수’로 축소하는 모양새다.

그 ‘바로미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민간 자문기구인 ‘21세기 구상 간담회’가 지난 6일 발표한 종전 70주년 기념 담화(아베 담화) 보고서다. 오는 14일 발표될 예정인 아베 담화 내용은 이 보고서의 내용을 기초로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일본이) 만주사변 이후 대륙 침략을 확대했다”고 인정한 반면, 한반도 식민 지배에 대해서는 “1930년대 후반부터 가혹해졌다”고만 했을 뿐 1910년 한·일 강제병합 자체에 대해서는 가치평가를 내놓지 않았다.

이러한 보고서 내용은 한국 입장에선 ‘퇴행’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무라야마 담화’와 ‘고이즈미 담화’ ‘간 담화’ 등 과거 일본 총리 담화에서 한반도 식민 지배에 대한 반성 입장이 빠짐없이 담겼기 때문이다. 과거 일제 침략의 대상이 중국이었던 반면 식민 지배의 대상은 한국이었다는 점에서 보고서가 중국 편향적인 시각을 담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14일 발표할 담화에서 ‘침략’ ‘사죄’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데 신중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과거 내각의 역사인식 계승을 중시할 뿐 개별 문구에는 개의치 않겠다는 중국의 입장을 반영한 것으로, 아베 총리가 담화 내용과 관련해 중국의 눈치를 더 살피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러한 상황은 한·일 관계가 최상이던 1998년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가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을 발표할 때와 정반대다. 당시 선언문에는 ‘식민 통치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사죄’라는 표현이 포함돼 한반도 식민 지배를 사죄하는 일본 정부 최초의 공식 입장 표명으로 평가됐다. 직후 중국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 방일 시 ‘한·일 공동선언’과 동일한 수위의 표현을 일본에 요구했으나 “한국과 중국은 상황이 다르다”는 이유로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일 아세안안보포럼(ARF)에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외무상이 “한·일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아베 담화의 내용이 중요하다”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의 당부에 “전쟁 반성 및 평화국가로의 길을 강조할 것으로 본다”고 원칙적인 답변만 내놓은 것도 이 같은 맥락과 무관치 않다.

한·일은 지난 6월 수교 50주년을 맞아 양국 정상이 각국 대사관에서 열린 기념행사에 교차 참석하는 등 관계 회복의 계기를 맞았었다. 직후 일본 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문제를 놓고 격한 외교전을 벌이면서 추가 개선의 모멘텀을 적잖이 상실한 상태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