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현대무용계에서 아시아를 대표하는 안무가를 꼽으라면 린화이민(林懷民·68·사진)을 능가할 인물이 있을까. 영국의 저명 무용 전문잡지 ‘댄스 유럽’이 1999년 20세기의 위대한 안무가로 피나 바우쉬, 지리 킬리안, 머스 커닝햄, 윌리엄 포사이드와 함께 린화이민을 선정한 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이런 린화이민이 이끄는 클라우드 게이트가 9월 11∼12일 LG아트센터에서 ‘RICE’로 12년 만에 내한공연을 갖는다.
린화이민이 1973년 설립한 클라우드 게이트는 중화권 최초의 현대무용단이다. 클라우드 게이트라는 명칭은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춤 ‘운문(雲門)’에서 유래됐다.
20대 초반 대만의 젊은 세대를 다룬 ‘매미’로 일약 중화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그는 미국 뉴욕 마사 그레이엄센터에서 유학하며 무용수 겸 안무가로서 성장했다. 또 대만의 경극, 일본 부토, 한국 궁중무용과 승무 등 아시아 춤을 배우며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했다. 중국 고전과 전설, 무술 등에서 소재를 가져온 그의 작품은 동양적인 미학을 보여주고 있지만 동서양인 누가 봐도 낯설지 않은 예술적 보편성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2003년 한국에 처음 소개된 클라우드 게이트의 ‘행초(行草)’의 경우 서예에서 춤의 원리를 차용한 것으로 서양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번에 선보일 ‘RICE’는 아시아인의 삶의 바탕이 된 쌀을 소재로 만들었다. 현재 전 세계 주요 극장과 페스티벌에 초대를 받았다.
린화이민은 국민일보와 이메일 인터뷰에서 “‘RICE’는 2013년 무용단 창단 40주년을 기념해 만든 것”이라며 “대만 남동부의 유명한 쌀 생산지인 츠상(池上)의 청정한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이어 “무용수들과 직접 농사에 참여하면서 자연의 순환과 거기에 어우러진 우리의 삶을 느낄 수 있었다”며 “대만 출신 비디오 아티스트 오웰 하오잰창의 도움으로 츠상 풍광을 담아냈지만 중요한 것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인간과 자연, 생명과 소멸 그리고 부활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린화이민이 아시아인에게 단순한 주식을 넘어 문화인 쌀을 소재로 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그를 전 세계에 알린 1978년 ‘유산(Legacy)’과 1994년 ‘방랑자들의 노래(Songs of the Wanderers)’에 이어 세 번째다.
그는 “쌀은 내 삶의 일부이자 그리움의 바탕이 되는 것”이라며 “내게는 성스러운 쌀이 관객마다 다른 의미로 다가 가겠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을 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국을 오랜만에 방문하는 것에 대해 그는 “1973년 한 달간 한영숙 선생에게 승무, 김천홍 선생에게 춘앵무를 배운 적 있다”면서 “당시 배운 느린 움직임과 호흡은 현대무용 트레이닝을 받은 내 몸에 깊이 각인됐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 영향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것 같다”고 했다.
예전보다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시아 현대무용은 전 세계 무용계의 주류에 서지 못하고 있다. 그는 아시아 현대무용이 주목을 받으려면 서양과 구별되는 동양의 전통을 소재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는 “내가 클라우드 게이트를 창단할 때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은 그다지 논의되지 않았었다”며 서양에 부각되기 위해 이국적인 동양 소재를 일부러 택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평소 커피와 차를 동시에 마시고 사찰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서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의 경계는 매우 흐리다”면서 “내 작품 소재는 전통적인 동양 문화에서 가져왔지만 현대적인 것이다. 국제화된 세상에서 중요한 것은 예술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우리 자신의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요즘도 소설을 쓰느냐고 묻자 “글쓰기는 외로운 직업인 반면 무용은 함께 하는 작업이라 좋아한다”며 “나는 이제 공간에서 몸을 갖고 (글을) 쓴다. 이것은 문자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인터뷰] 대만의 세계적 안무가 린화이민 “나는 커피와 차를 다 즐기는 사람”
입력 2015-08-10 02: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