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몰라떽 마을에서의 사역은 영적전쟁의 연속이었다. 좀 조용하게 사역한다 싶으면 새로운 문제가 불거져 기도로 부르짖어야 했다. 악한 영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교회가 훼파되길 바라며 공격의 끈을 늦추지 않았다.
학교에 폭탄이 떨어진 테러사건은 교사와 직원, 학생들까지 공포로 몰아 넣어 학생도 줄고 사표를 쓴 교직원도 많았다. 생명까지 걸고 일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은 당연했다.
“주님. 폭탄테러는 너무나 충격이 큽니다. 숱한 고생으로 이제 학교와 교회를 키워 놓았는데 한 순간에 허물어졌습니다. 회복할 길을 알려주세요.”
기도하는 중에 편지가 한통이 날아 왔다. 방글라데시 대통령궁에서 온 편지였다.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대통령궁에서 지도자들을 초청해 오찬을 하는데 참석해 달라는 통보였다. 내가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부분이 알려져 초청인사가 된 것 같았다.
그러나 이날은 교회도 행사가 많아 갈 수 없다고 전하려는데 직원들은 한사코 가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브라더가 대통령과 친한 사람이라는 것을 동네 무슬림들이 알고 괴롭히지 못한다는 이유였다. 결국 대통령궁으로 가기로 하고 정장을 차려 입어야 하는데 지난번 미국방문에서 L집사가 사준 양복이 생각났다. 난 선교지에서 양복을 입지 않으니 대신 선교비를 주면 좋겠다는 뜻을 전달했는데 부득불 L집사는 “하나님이 양복을 해주라고 했다”며 고집을 꺽지 않았다.
그때 최고급 이태리제 양복에 셔츠와 넥타이까지 한꺼번에 선물 받으면서 속이 쓰렸던 나였다. 이 돈이면 애들 몇달치 점심값인데 하고 속으로 애를 태웠는데 이때 입으라고 하나님이 미리 준비해 주신 것이 분명했다.
오찬 날, 멋있게 양복을 빼입은 나는 대통령궁으로 향했다. 막상 가보니 각계 종교지도자 70여명이 오찬을 하는 자리였다. 이날 내 양복과 넥타이가 최고급이라 그런지 참석자 중에서 가장 돋보였다. 대통령과 일일이 악수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악수할 때 TV카메라맨이 더 열심히 찍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 방글라데시 사람들이 거의 다 보는 국영방송 7시 뉴스시간에 나와 대통령이 힘차게 악수하는 모습이 방영됐다. 그리고 이 모습은 밤 8시 뉴스, 10시뉴스까지 계속 나와 안 본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가난한 촌동네인 우리 몰라떽이 발칵 뒤집어졌다. 브라더가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악수하는 모습은 이곳 주민들이 보기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다. 모두들 브라더가 대통령을 만날 정도로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인지 몰랐다며 어쩔줄 몰라했다.
대통령과 악수한 TV방영 이후 말 그대로 전세가 확 바뀌었다. 도망갔던 직원이 돌아오고 안나오던 학생들도 다시 등교했다. 성도들도 “우리 브라더 TV뉴스 나온 것 봤냐?”며 기세등등하게 동네를 돌아다녔다. 하나님이 폭탄테러 이후 낙망에 빠진 우리의 안타까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 것이 분명했다.
나중에 미국에 가서 L집사님을 만나 양복간증을 하며 감사를 표시했다. 그런데 그 사이 L집사님은 사업이 더욱 번창해져 있었다.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린 것에 결코 그냥은 없다는 것이 내 오랜 사역의 결론이다.
나는 이번 역전극을 그냥 넘기고 싶지 않았다. 또 다시 전도집회를 계획했다. 이번에는 ‘밀레니엄 페스티벌’이란 이름을 걸고 매일 5000명이 모이는 전도집회를 갖게 해달라고 100일 작정기도를 시작했다. 호기를 잡았을 때 또 한번 영적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정리=김무정 선임기자 kmj@kmib.co.kr
[역경의 열매] 박천록 (14) 대통령과 악수 모습 TV 방송 뒤 동네가 발칵
입력 2015-08-10 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