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신창호] ‘자기 정치’는 나쁜 건가

입력 2015-08-07 00:20

요즘 날씨는 높은 습도와 불볕 일변도다. 가히 살인적인 무더위에 사람들은 숨이 콱콱 막힌다. 우리 정치에선 한 달 전쯤이 그랬다. ‘배신의 정치’와 ‘자기 정치’란 화두 때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의 여당 원내대표 유승민 의원을 향해 ‘국민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정치를 하는 사람’이라고 비수를 꽂았다. 유 의원은 보름 남짓 버티다 원내대표직을 던졌다.

정치인에게 자기 정치란 뭘까. 2000년대 이후 현대정치는 보수파와 진보파의 수렴 현상이 뚜렷하다. 보수정당이 진보정당의 정책을 받아들이고, 거꾸로 진보정당도 마찬가지다. 항상 보수파엔 분배와 복지 문제가, 진보파엔 성장과 지속가능한 국가재정 문제가 아킬레스건이었다. 두 진영은 서로 반대편을 벤치마킹하면서 취약점을 보완하고 있다. 독일의 기민당과 사민당이, 영국의 노동당이 그런 방법으로 집권에 성공했다. 18대 대선 직전의 새누리당도 그랬다. 야당의 경제민주화와 부자증세를 정강정책으로 받아들여 19대 총선에서 승리했고, 당을 이끌던 박 대통령은 대선의 승자가 됐다.

이런 의미에서 박 대통령이야말로 자기 정치를 했던 정치인이었다. 그전에도 그랬지만 이명박정부에선 5년 내내 그랬다. 약속과 공약을 목숨처럼 여겼고, 정부여당이 이를 모른 척하면 사정없이 경고장을 던지고 반대 목소리를 냈다. 그렇게 박 대통령은 자기만의 경제정책, 자기만의 복지정책, 자기만의 대북정책을 마련했다. 그때 아무도 그에게 “자기 정치는 나쁜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특정한’ 이익이 아니라 ‘보편적’ 이익을 위해 정치를 하고 있다는 믿음에서였다.

유 의원도 자기 색깔이 뚜렷한 정치인이다. 누구보다도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이 야기할 위험성, 양극화와 공동체의 붕괴, 재벌체제의 폐단, 증세 없는 복지의 문제점에 관심을 기울여온 사람이다. 2월 원내대표 취임 일성으로 그가 현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유 의원이 자기 정치색을 드러내자 이번에는 사방에서 “나쁜 자기 정치”라고 했다. 대통령의 ‘배신의 정치 심판론’에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들이 전부 가세했다. “유승민이 정치적 야심만을 위해 일부러 박근혜정부에 반대한다”는 논리였다.

진짜 유 의원이 야심을 채우기 위해 자기 정치를 한 걸까. 보수여당에 부족한 부분이 뭔지, 어떻게 해야 시대의 필요를 여당 정책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지에 관해 얘기한 것이 ‘배신’으로 치부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유 의원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이제 벗어났다. 만약 그가 원내대표라는 화려한 직책에 머물던 동안에만 자기 정치를 했고, 이제 더 이상은 자기 정치를 하지 않는다면 ‘나쁜’ 자기 정치를 했던 사람으로 기억될 게 틀림없다. 반대로 물밑에서도, 누가 봐주지 않는 곳에서도 스스로 제기했던 문제들에 천착하고 새로운 정책과 대안을 찾아낸다면 그의 자기 정치는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좋은 자기 정치를 하는 정치인이 많았으면 좋겠다. 정략에 따라 서로를 할퀴고 정쟁에만 골몰하는 의원들보다 보통사람들의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법과 제도를 찾아내는 일에 남 눈치 안 보고 몰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정당을, 정치를, 사회와 국가를 바꿀 수 있으니까. 아무리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하고 정치인이 경멸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해도 만족할 수 없는 현재를 통째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정치요, 정치인에게 주어진 임무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