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경영권 분쟁] 쥐꼬리 지분으로 400여개 순환출자… 그룹 ‘쥐락펴락’

입력 2015-08-06 02:19
강석윤 롯데그룹 노동조합 협의회 의장(가운데) 등 롯데 계열사 노조위원장들이 5일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 교육관에서 신동빈 회장을 지지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지난해 8월에도 롯데는 공정거래위원회를 발칵 뒤집어 놨다. 롯데가 9만5033개나 됐던 순환출자 고리를 142개로 허위 보고한 것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허위자료를 제출한 뻔뻔한 대기업과 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무능한 공정위의 합작품이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롯데 사태가 터지자 공정위는 뒤늦게 불투명한 롯데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고 6일에는 새누리당과 당정협의까지 열어 개선안을 논의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단순한 실태 파악이 아니라 현행법상 용인되고 있는 해외 계열사를 통한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등 실질적인 지배구조 개선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뒤늦게 실태 파악 나선 공정위=롯데의 지배구조는 61개 대기업집단 중 가장 복잡하다. 신격호 총괄회장 일가는 낮은 지분과 수백개의 순환출자로 계열사를 지배해 왔다. 공정위가 지난 6월 말 발표한 ‘2015 대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에 따르면 신 총괄회장은 전체 그룹 주식의 0.05%만 보유하고 있고,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일가를 모두 합쳐도 지분율이 2.41%밖에 되지 않는다. 신 총괄회장 일가는 낮은 지분율로 400개가 넘는 순환출자 고리를 이용해 그룹을 경영해 왔다. 하지만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인 일본 롯데홀딩스와 광윤사의 지분구조는 그룹 내에서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정부도 일본 기업이라는 이유로 지배구조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의문의 L투자회사 한 곳의 주소지가 신 총괄회장의 일본 자택 주소라는 보도도 나왔다.

공정위는 뒤늦게 광윤사 등 롯데의 해외 계열사 소유 실태 파악에 착수했다. 롯데그룹의 실질적 주인인 신 총괄회장이 광윤사 등 해외 계열사를 통해 국내 계열사를 지배하는 정황이 드러났기 때문에 이를 계기로 조사에 들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10년 넘게 광윤사 등 해외 계열사가 롯데호텔 등 주력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야 파악에 나섰다는 점에서 공정위가 그동안 직무유기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에 공정위 관계자는 5일 “수십개에 달하는 대기업집단이 제출한 지배구조 자료를 일일이 검토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해외 계열사 통한 순환출자 규제 필요=공정위가 지난해 7월부터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했지만 쥐꼬리만한 지분으로 전체 그룹을 지배하는 전근대적인 대기업의 지배구조는 변함이 없다. 순환출자 고리 수는 감소했지만 기업들의 자발적 노력보다는 2·3세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지분 ‘잔가지치기’에 따른 부수적 효과였다는 지적이다.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됐지만 해외 계열사를 이용한 새로운 순환출자 고리는 오히려 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그룹 내 10개 계열사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출자 고리를 형성하고 있지만 이 고리에 단 1개의 해외 계열사가 끼면 순환출자에 해당되지 않는다. 현재 순환출자를 형성하고 있는 11개 그룹을 보면 국내 계열사보다 해외 계열사가 3배 정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계열사로의 국내 자본 및 수익 유출도 증가 추세다. 롯데의 경우 지난해 255억원이었던 롯데호텔 배당금 중 254억원이 롯데홀딩스 등 일본 주주들이 가져갔다. 이를 포함해 지난해 상장·비상장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주주들에게 약 3000억원을 배당으로 나눠줬는데 이 중 일본 롯데그룹 관계사가 받아간 배당액은 339억8426억원으로 약 10%였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일본 롯데홀딩스 등 16개 일본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지난 3년(2012∼2014년)간 한국 내 법인에서 받은 배당금은 총 1397억8700만원으로 집계됐다.

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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