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모든 것이 급속히 변하는 세상에서는 무엇이 리스크(위험)인지조차 모르는 ‘무지(無知)의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달 8일 열린 상반기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같은 외부의 예측 불가능한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정작 그룹 내에 상존했던 지배구조의 위험에 대해선 무지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형제의 난’ 이후 롯데그룹의 지배구조 문제가 도마에 오르면서 그룹의 핵심사업 역시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면세사업은 정부 특허가 선행돼야 하는 사업인데 외국계 주주가 대다수인 기업에 사업권을 주는 게 타당하느냐는 지적이 업계에서 나오고 있다.
일본 롯데 계열사가 99.28%의 지분을 갖고 있는 호텔롯데는 지난 10년 동안 얻은 영업이익 1조8000억원 중 대부분인 1조7000억원 정도를 면세사업부에서 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올해 말 서울 시내면세점 2곳의 특허가 만료되는 롯데 입장에선 면세점 특허를 수성(守成)하는 것이 힘들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롯데는 지난해 기준 2조원 가까운 매출이 나온 소공점과 4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월드타워점의 특허가 오는 12월 만료된다.
이전까지 면세점 특허는 사업자가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경우 자동으로 갱신됐지만 2013년 개정된 ‘보세판매장 운영에 관한 고시’에 따라 허가기간(5년) 만료 전에 희망 사업자의 사업신청서를 받아 신규 경쟁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고시 개정으로 경쟁 체제로 바뀌긴 했지만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이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기존 사업자인 롯데가 특허를 갱신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소공점의 경우 지난해 2조원에 가까운 매출을 올릴 정도로 규모가 커 사업권을 잃을 경우 고용 승계 문제 등 혼란이 불가피하다. 실제 지난해 호텔신라 서울점과 제주점 역시 특허 종료를 앞두고 심사를 받았지만 단독으로 사업을 신청해 특허가 갱신됐다. 하지만 최근 들어 면세점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 높아진 데다 롯데그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특허 갱신을 장담할 수만은 없는 처지가 됐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여전히 롯데가 특허를 갱신할 가능성이 높지만 두 곳 중 한 곳은 특허를 잃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최근 나오고 있을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면서 상반기 시내면세점 경쟁에 뛰어들었던 경쟁 기업이 반사이익을 얻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롯데와 함께 유통시장에서 경쟁하고 있는 신세계그룹과 현대백화점그룹은 다음 달 25일 신청이 마감되는 시내면세점 특허 경쟁에 뛰어들 가능성이 있다. 두 기업은 지난달 두 곳이 추가된 서울 시내면세점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HDC신라면세점,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에 밀려 특허를 얻지 못했다.
시내면세점에 대한 기대감 외에 롯데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되면서 두 기업이 롯데의 매출을 흡수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기대감이 반영되면서 두 기업의 주가 역시 사흘 연속 상승했다. 신세계 주가는 5일 전날 대비 7.13% 올랐고, 현대백화점 역시 전날 5.7% 오른 데 이어 이날 1.9% 상승한 채 장을 마감했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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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06 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