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93) 여사의 방북 여정엔 이명박정부 이후 계속돼온 지리멸렬한 상호 탐색전에 대한 반전의 기대가 놓여 있다. 특히 이 여사가 6일 예정이던 일정을 방북 첫날인 5일 소화하면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와의 면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 여사는 5일 낮 12시쯤 백화원 초대소에 들른 뒤 오후 평양산원(여성 종합병원)과 옥류 아동병원을 차례로 방문했다. 이 병원은 당초 6일 오후 방문 예정이었지만 하루 앞당겼다.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2009년 방북한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의 사례를 볼 때 김 제1비서와의 면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당시 북한은 2박3일 일정으로 방북한 현 회장의 귀국일자를 하루씩 5일이나 미루도록 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면담했다. 이 여사 역시 김 제1비서의 일정에 맞추기 위해 일부러 일정을 당기도록 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평양산원과 옥류 아동병원 간 거리가 멀지 않은 만큼 고령인 이 여사의 편의를 위해 변경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 여사 일행은 이어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가 백화원 초대소에서 주최한 환영 만찬에도 참석했다. 만찬에는 이 여사를 공항에서 영접한 맹경일 아태평양위 부위원장 외에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사는 북측 선물로 직접 짠 털목도리와 의료·의약품 등을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방북의 성패는 김 제1비서와의 면담 성사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게 중론이다. 김 제1비서가 공포 정치를 펼쳐온 탓에 북한 관료들은 주요 정책 결정을 미룬 채 김 제1비서의 눈치만 보는 상태다. 따라서 남북 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선 김 제1비서와의 면담이 불가피하다. 아버지 김 국방위원장의 유훈 통치를 펼쳐온 김 제1비서 역시 이 여사를 마냥 외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그는 지난해 12월 친서를 보내 이 여사를 초청하기도 했다.
면담이 성사될 경우 인도적 차원의 합의는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북한 유엔인권사무소 서울 개설 등 북한의 반인권적 처사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고조되고 있어서다. 일단 만나기만 하면 어떤 식으로든 북측이 대남 메시지를 전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산가족 상봉과 억류 국민 문제를 비롯해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8·15남북공동행사 등 현재 남북 간에는 현안이 산적해 있다.
이번 방북을 이 여사의 개인 일정이라고 선을 그은 정부 역시 내심 기대감을 놓지 않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방북일에 맞춰 경원선 복원 현장을 방문해 북한에 대한 진정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이다.
북한도 이 여사의 방북이 자신들에게 나쁘지 않다는 정치적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6·15공동선언에 대한 계승 의지를 밝히면서 꽉 막힌 남북관계의 책임을 우리 정부에 미루고 태도 변화를 요구할 수 있다. 남측은 물론 대외적으로도 ‘요건만 맞으면 대화할 수 있다’는 모양새를 연출해 북핵 압박 등에 대한 돌파구로 삼을 가능성도 높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북한이 6·15공동선언을 만든 당시 남측 관계자들을 만나려 했던 것으로 안다. 적어도 대남 일꾼 사이에서는 남한 정부에 메시지를 전하려 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이희호 여사, 오늘 김정은과 면담 가능성
입력 2015-08-06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