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마초’ 부끄러운 민낯… 국회의원·교수·경찰·교사 사회 지도층 잇단 성범죄

입력 2015-08-06 02:55

‘마초적’이라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감수성이 둔감하다,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고 답했다. 이 교수는 “마초 문화는 기본적으로 배려가 없는 것이다. 결국 피해자와 약자, 여성의 입장에 무감한 태도가 권력 남용과 맞물려 이런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고 했다.

대학교수부터 국회의원, 경찰관, 고등학교 교사까지 권위를 가진 집단의 성범죄 혐의가 연일 들춰지고 있다. 양성평등을 향해 달려가는 시대에도 적잖은 지도층 남성의 성의식은 여전히 빈곤하다. 2015년 여름, 우리 사회는 변화를 거부하는 한국 마초의 민낯을 보고 있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최근 성범죄 가해자로 등장한 경찰 교사 국회의원 등은 모두 권력이 주어진 사람이다. 그 권력을 이용해 주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악용하는 습성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런 성범죄자를 ‘권력지향적 사회범죄자’라고 지칭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이 부류는 잘못을 저질러도 발각되지 않거나 무마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서로 비행을 알게 모르게 숨겨주는 ‘침묵의 문화’가 있다. 다 권력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이 교수는 꼬집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높은 도덕 수준을 요구받는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어도 지도층 성범죄가 끊이지 않는 건 여성과 달리 남성의 의식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문화지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남의 눈이 없는 곳에서 권력 남용은 더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이수정 교수는 “그들에게도 경계하는 마음이 있겠지만 취기가 올랐거나 은밀하게 둘만 있게 된 경우처럼 어떤 조건이 성립되면 도덕적 해이가 오면서 범죄가 벌어진다”고 했다.

사회 지도층 성범죄의 배경을 파고 들어가면 마초 문화가 나온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여성을 깔보고 남성다움을 우월한 것으로 여기는 마초 문화는 폭력적이면서 자기중심적인 문화이기도 하다. 이수정 교수는 “그들(마초)은 사회 변화에 둔감하다. 자신의 잣대만 중요할 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 체계에는 굉장히 무관심하다”고 해설했다.

마초적인 남성은 변화에 더딜 뿐 아니라 저항적이기까지 하다. 이 때문에 자각도 못한 채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습관적 행동이 범죄로 비판받으면 스스로를 점검하기보다 ‘그게 뭐 그리 큰 문제냐’는 식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지위에 익숙해져 자기 권한을 스스로 감시하는 능력이 약해진 상태라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김윤태 교수는 남녀 간 소득·지위 격차를 또 하나의 구조적 배경으로 꼽았다. 그는 “사회적 격차가 클수록 열등한 지위나 소득을 가진 사람을 깔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문화가 성희롱·성추행을 해도 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웅혁 교수는 “교사와 경찰관이 공무원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이 범죄를 저지르면 그 제도는 정당성을 잃게 된다”고 했다. 이어 “사회제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그래서 저항과 반목, 갈등을 조장할 수 있기에 더 충격적인 범죄”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남녀 간 사회 격차를 줄여가면서 성규범 교육과 피해 신고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웅혁 교수는 “주변에서도 침묵하면 안 된다. 방조자에게도 연대책임을 물어 가해자와 함께 징계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