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지배구조 개선방안이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삼성그룹과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과의 분쟁으로 정치권을 중심으로 대기업 대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방안이 힘을 얻었지만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상황은 반전됐다. 롯데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여야 할 것 없이 대기업 오너 일가의 전횡을 막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다. 정치권의 이런 오락가락 행보에 정부의 대기업 정책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지난달 중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어렵사리 통과된 직후 전국경제인연합회와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도 경영권 방어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공격하는 헤지펀드까지 보호해야 하느냐”는 질문과 함께 “회사의 지배권을 강화하는 차등의결권, 공격하는 회사의 지배권을 약화하는 포이즌 필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포이즌 필·차등의결권’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온 새누리당 정갑윤 의원도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지난 4일 대표 발의했다. 차등의결권은 기존 대주주의 주식에 다른 주식보다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포이즌 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가 있을 때 기존 주주들에게 회사의 신주를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다.
그러나 롯데 사태 직후 분위기는 급반전했다. 롯데그룹 일가의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지켜본 싸늘한 시선은 다른 재벌로 이어졌다. 재벌의 전근대적인 경영을 해소하려면 이사회 독립성 강화와 순환출자 금지 등 소유구조 자체를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친박계 핵심인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이 지난 3일 롯데그룹의 경영권 분쟁을 강력하게 질타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후 여당은 지난해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었던 기존 순환출자 해소까지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삼성 저격수’로 알려진 박영선 의원조차 엘리엇 사태 당시 삼성 편에 섰다는 평을 들었던 새정치민주연합은 이참에 재벌개혁 드라이브를 강력하게 걸고 있다.
대기업 정책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는 난처한 입장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5일 “불과 보름 사이에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지난달 발생한 삼성의 엘리엇 사태나 지금의 롯데그룹 사태는 모두 오너 일가의 경영권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 여론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정위 관계자는 “롯데 경영권 분쟁을 계기로 다시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또다시 대기업 위주의 경제활성화가 강조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대기업의 후진적 지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액 주주들이 자신들의 권한으로 대주주를 감시하는 실질적인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제개혁연대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잘못된 재벌구조 관행을 바꾸려면 상법이나 공정거래법이 아니라 침묵하는 다수가 나설 수밖에 없다”며 “롯데 지분의 10%를 갖고 있는 국민연금이나 삼성 주주총회 때 반대표를 던진 30%가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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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06 0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