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사태가 이전투구를 넘어 점입가경이다. 수십년간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던 황제식 폐쇄경영의 치부가 열흘도 안 된 기간에 상당부분 터져 나왔고, 국민들의 공분이 불매운동에까지 이르고 있다. 언론이 막장드라마 같은 골육상쟁과 패륜적 하극상에 초점을 맞추는 사이에 정작 검증하고 따져봐야 하는 문제들을 놓친 게 적지 않다.
우선 80여개의 롯데 계열사들이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갖고 버티면서 10대 재벌의 90% 이상의 고리를 차지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신격호 창업자는 0.05%의 지분으로, 모든 친인척은 총 2.5% 이하의 지분으로 롯데그룹 전체 계열사를 장악할 수 있게 된 것은 순환출자 덕택인데, 여타 재벌들과 달리 롯데는 상속을 통한 경영권 승계 문제가 국내 법인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고 일본의 비상장법인들을 인계하면 되기 때문에 삼성 등 다른 재벌들처럼 세금 문제나 이를 회피하기 위한 기업 인수·합병(M&A) 문제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한국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호텔롯데의 주식 대부분을 일본 롯데홀딩스(19.07%)와 일본 롯데계열 투자사인 L투자사들(80%)이 갖고 있고, 이들과 일본 롯데홀딩스를 지배하는 광윤사가 모두 비상장회사라서 국내 법과 감독 밖에 놓여 있어 승계하는 데 훨씬 더 손쉬운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둘째, 한국 롯데그룹의 핵심인 호텔롯데는 매출액의 80%를 시내면세점에서 창출하는데, 지난 30년간 정부 특혜로 적정 경쟁시장가격(수수료)의 0.2%에 해당하는 연간 약 20억원의 수수료만 내고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였다. 결국 롯데그룹은 한국에서는 특혜로 성장하고, 경영권 승계는 일본의 비상장법인을 통해 한국법을 회피하는 대단히 교묘한 경영기법과 지분구조를 갖고 있다. 이래서 일본 롯데홀딩스를 장악하면 후계자가 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아는 두 형제가 목숨 건 사투를 벌이는 것이다. 더욱이 일본은 이사회 내 이사들의 권한이 우리보다 훨씬 더 독립적이고 강하기 때문에 연초에는 차남이 창업자를 배후로 일본 롯데홀딩스를 승계하려 했고, 열흘 전에는 장남이 뒤집기 시도를 하다가 대혼전이 벌어지고 골육상쟁을 넘어 부자전쟁까지 발발한 것 같다.
셋째, 한국 롯데그룹 전 계열사의 대표들이 차남을 지지하는 성명을 내고 집단적 공동운명체가 되기로 선언한 것은 권력의 풍향계를 읽은 것으로 해석은 되나 정말로 차남이 시장에서 인정받고 경영능력을 검증받은 사람인지를 떳떳이 공표하기 위해서는 적자폭이 급증한 지난 4년간 롯데그룹 4개 계열사가 중국과 홍콩법인에 투자해서 초래한 1조 1500억원의 손실에 대해서 명쾌한 답변을 해야만 할 것이다. 8억엔을 일본 내 벤처기업에 투자했다가 실패했다고 장남을 해임했던 창립자가 그 엄청난 적자를 알고도 왜 가만히 있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야 한다.
이제 재벌개혁을 법과 제도 및 시장압력 차원에서 원점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첫째, 개발도상 단계에서 재벌들에게 주었던 모든 특혜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시내면세점 재계약이 되는 시점에서 모든 특혜를 배제하고 경쟁입찰해서 철저히 시장가격을 받아야 한다. 둘째, 상법개정을 통해 반드시 전자투표·서면투표제 도입 및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실시하고, 집단소송제 도입을 통해 소액주주 등의 외부주주가 적극적으로 경영진을 감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공정거래법을 개정해서 대기업집단에 대해서는 순수지주회사를 강제함으로써 롯데그룹과 같은 기형적 사업구조와 지배구조로 인해 국민경제적 피해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끝으로 국민연금 등의 연기금과 기관투자가들이 더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해야 한다.
권영준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
[시사풍향계-권영준] 재벌개혁 필요성 보여준 롯데사태
입력 2015-08-06 0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