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경영권 분쟁] 롯데發 반재벌 정서 확산 조짐에… 재계 ‘전전긍긍’

입력 2015-08-05 02:51
금융소비자원은 4일 “롯데 사태는 국내 재벌의 비양심적인 모습을 드러낸 단면으로 국내 재벌이 사회적 책임에 관심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준다”며 롯데 전 계열사에 대한 불매운동 전개를 선언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전경. 서영희 기자

롯데그룹 ‘형제의 난’이 한국과 일본에 걸쳐 있는 그룹의 사업 기반마저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한국기업이냐 일본기업이냐’는 정체성 논란에 이어 족벌 경영에 대한 반감까지 겹치면서 향후 사업 추진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롯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반(反)대기업 정서로 확산돼 소수지분으로 거대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구조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총수의 특별사면을 기대하고 있던 기업들도 혹시나 불똥이 튀지 않을까 사태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4일 요미우리, 마이니치, NHK 등 일본 주요 언론은 일제히 롯데그룹의 경영권 다툼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롯데그룹 사태와 관련해 간간이 단신으로 소식을 전하던 것에서 비중 있는 분석 기사를 내놓기 시작한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은 경제면 톱기사로 ‘롯데 혼미 형제 내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마이니치신문도 한국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 결정까지 진흙탕 싸움은 계속 될 것 같다”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에까지 롯데그룹 사태가 주요하게 다뤄지면서 대부분 매출을 한·일에서 올리고 있는 롯데그룹의 타격도 불가피해졌다. 야후 재팬 등 일본 포털 사이트 등에선 관련 기사에 롯데를 ‘한국기업’으로 칭하며 불매운동을 해야 한다는 댓글이 높은 추천을 받고 있다. 반면 한국에선 신동주 전 일본 롯데 부회장의 일본어 인터뷰, 한국 롯데를 사실상 일본 롯데가 소유하고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일본기업’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추진하는 사업에도 차질이 생기고 있다. 2013년부터 추진 중이던 롯데정보통신의 기업공개가 사실상 미뤄진 데 이어 러시아·인도네시아의 복합쇼핑몰 인수, 부산 북항 복합리조트 사업 등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하반기 사업권이 만료되는 서울 시내면세점(소공점·월드타워점) 특허 심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특히 이번 사태 이후 정치권, 시민사회 등을 중심으로 재벌개혁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다른 대기업들도 향후 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롯데의 경우 다른 기업을 압도하는 416개의 순환출자 고리를 갖추고 있긴 하지만 소수의 지분으로 그룹 전체를 지배한다는 점에서 다른 재벌 대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 6월 발표한 ‘2015년 대기업집단 주식소유 현황’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SK, LG 등 총수가 있는 상위 10대 집단의 총수 지분율은 역대 최저인 0.9%를 기록했고 총수 일가 지분율은 2.7%로 조사됐다. 1996년 2.9%였던 총수 지분율이 갈수록 줄고 있는 반면 지배력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것이다.

총수가 광복 70주년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기업들은 입장이 더욱 난처해졌다. 롯데그룹 경영권 다툼 사태가 모처럼 조성된 대규모 사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권오인 경실련 경제정책팀 팀장은 “해외는 불투명한 지분구조 사례가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불건전한 지배구조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며 “오너 일가가 소수지분으로 장악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쪽으로 정책 변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현길 김유나 기자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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