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우리가 꿈꾸는 맛있는 세상

입력 2015-08-05 00:10

얼마 전 어린이재단에서 연락이 왔다. 정기적으로 보내는 후원문자를 따뜻하고 부드럽게 수정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어린이재단은 내가 처음 일했던 잡지사가 소속된 곳이다. 그 잡지는 ‘우리가 꿈꾸는 맛있는 세상’이란 주제로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주변의 따뜻한 이야기,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후원 문화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 이 잡지의 속마음이었다.

나는 잡지를 만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그들의 삶을 엿봤다. 사고로 잃은 딸의 꿈을 대신 이루려고 대학에 입학한 엄마, 몇 년 동안 아르바이트한 돈으로 세계여행을 다녀온 대학생, 재난지역으로 봉사를 떠난 의사, 밴드 하는 할아버지, 목욕 봉사하는 할머니 등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이야기가 여전히 기억난다.

가끔은 그들의 소식을 타 매체에서 듣곤 한다. 그들 대부분은 소망하던 일을 이루거나, 그때 그 일을 계속 하거나, 혹은 여전히 누군가를 돕고 있었다.

한번은 서울 외곽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아줌마를 취재했었다. 오뎅이나 김밥을 그냥 달라던 사람이 하도 많아서 아줌마는 ‘배고픈 사람들은 그냥 먹으세요’라고 적어두고 장사를 했다. 거리에서 하는 일은 안쓰럽고 슬픈 사람들, 상상할 수 없는 악취를 풍기는 홈리스들을 모른 척할 수 없게 한다고 아줌마는 말했다. 그들 중 몇은 집에 데려가 씻겨주고 재워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느라 결국 나는 밤 11시 넘어서야 퇴근했다. 가기 전 아줌마는 크고 싱싱한 사과를 검은 봉지에 가득 담아줬다. 갈 길이 멀고 지쳐서 사양하고 싶었지만 그 성의를 거절할 수 없었다. 아줌마는 그런 사람이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눠야만 하는 사람.

나는 그 아줌마를 생각하며 이번 주말, 어린이재단의 후원 문자를 수정해 볼까 한다. 그 분은 배고픈 거리의 사람들을 여전히 도와주고 있겠지. 후원 글을 쓰거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글을 쓸 때면 그날 아줌마가 검은 봉지에 가득 담아준 사과가 기억난다. 무겁지만 따뜻했으므로.

곽효정(에세이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