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만 들어서는 알 수 없다. 이 밴드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연주를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이들의 나이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힘들다. ‘인디 조상님’ 크라잉넛 이야기다. 밴드가 결성된 지 올해로 20년, 멤버 5명 모두 마흔이 넘었다. 하지만 크라잉넛의 음악은 여전히 젊고 새롭다. 크라잉넛이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펑크밴드로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음악으로 모든 게 설명된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 노래 가운데 아무거나 한 곡을 골라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변함없이 젊지만 계속 성숙해져 온 크라잉넛을 확인하는 것은 이렇게 간단하다. 늙지 않은 펑크밴드, 앞으로도 늙지 않을 것만 같은 크라잉넛을 지난달 23일 서울 마포구 연습실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20년을 함께했다는 건 어떤 건가요?
“멤버 변동 없이 같이 음악을 할 수 있었다는 게 좋더라고요. 오래된 팀은 많아도 멤버가 바뀌지 않은 록밴드는 ‘산울림’ 정도 말고는 별로 없어요.” (보컬 박윤식) “저희는 잘 모르겠어요. 시간이 이렇게 됐나?”(베이스 한경록)
1995년 동갑내기 친구들(박윤식, 한경록, 기타 이상면, 드럼 이상혁)이 모여 만든 크라잉넛은 99년 2살 많은 형, 아코디언 김인수가 합류하면서 5명이 됐다. 이후 한 번도 멤버 간 불화나 교체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 이상면과 이상혁은 쌍둥이다. 형제라는 사실이 결속력을 공고히 해주는 것은 아니다.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노엘과 리암 갤러거 형제는 숱하게 싸우다 결국 갈라섰다.
오래된 사이라 마냥 편할 것 같은데 이 때문에 더 조심하게 된다고 한다. 음악작업을 할 때 특히 그렇다. 누군가 작곡을 해 오면 멤버들에게 먼저 곡을 들려준다. 합주를 하면서 편곡을 하고 녹음을 하면서 고쳐나간다. 멤버들 반응이 시원찮으면 묻히기도 한다. 이들은 이 과정을 ‘자체 심의’라고 부른다.
자체 심의는 크라잉넛의 노래가 탄생하기 위한 첫 관문이고 가장 어려운 시간이다. 가차 없이 진행되느냐고 묻자 “아니다”고 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라 그런지 대놓고 별로라고 말을 못해요. (별로일 수도 있겠지만) 만든 사람의 느낌이라는 게 있잖아요.”(이상혁)
“어쨌든 좋은 부분이 있으니까요. 최대한 잘 살려보려고 해요. 버려놨던 것도 나중에 다른 노래에 반을 잘라서 넣는다거나, 다른 노래에 영감을 주는 게 되기도 하고요.”(한경록) 크라잉넛이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흔들리지 않고 이어져 왔던 것은 존중과 배려, 격려가 있기에 가능했다.
멤버 모두 마흔이 넘은 펑크밴드는 우리나라에서 크라잉넛이 유일하다. 4명은 결혼을 했다. 몇 년 전 한 팬이 아버지가 된 이상혁에게 “펑크밴드를 하면서 아이가 있느냐, 정신을 잃어버렸다”고 질타했단다. 펑크밴드가 나이를 먹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나이가 들고도) 망나니처럼 철없는 것과 철없는 시절을 겪은 노련한 사람이랑은 다른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 책임져야 할 일이 늘어나게 마련이에요. 장르에 마인드를 고정시키면 그 사람은 노숙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이상혁)
나이 드는 게 좋다고도 했다. 멤버들과 무대에서 호흡하는 것을 즐기게 됐고, 공연 흐름을 알게 됐고, 관객과 교감도 깊어졌다. 그래서 공연이 더 재밌어졌다. “지금은 멀리 볼 줄 알게 된 것 같아요. 운전을 할 때 코앞만 보고 달리면 사고 날 수 있죠. 처음에는 여기저기 부딪히기도 하고요. 지금은 멀리 보고 안정적인 운전을 하게 된 거죠.”(이상면)
김인수는 유부남 펑크밴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펑크는 생계밀착형 록음악이에요. 내 인생에서 기타 하나만 더 있으면 되는 정도죠. 그래서 외국에서는 (펑크 록커가) 결혼도 많이 하고 애도 많이 낳아요.”
크라잉넛은 TV에 잘 출연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규앨범 7장외에도 영화음악, 옴니버스 음반 등 크라잉넛이 들어간 음반만 40장 가까이 된다. ‘말달리자’ ‘서커스 매직 유랑단’ ‘밤이 깊었네’ ‘퀵 서비스맨’ ‘룩셈부르크’ ‘가련다’ ‘미지의 세계’ ‘좋지 아니한가’ 등 인기곡들이 끊이지 않았다. 최근에는 20주년 기념 싱글 ‘안녕’을 내놨다. 꾸준히 국내외 크고 작은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 중국, 일본, 호주 공연도 앞두고 있다.
“우리는 묵묵하게 라이브 연주를 하고, 공연장에서 땀으로 보여줘서 20년을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렇게 앞으로 20년 뒤에도 펑크음악 하고 있을 것 같아요.”(박윤식)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시간이 이렇게 됐나, 예순에도 펑크 할 것”… ‘인디밴드 조상’, 스무살 ‘크라잉넛’ 마흔이 되다
입력 2015-08-05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