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든 수마트라든 위안부 없는 곳 없었어요”

입력 2015-08-04 02:10

“싱가포르든, (인도네시아) 수마트라든 조선인 위안부가 없는 곳이 없었어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가 3일 공개한 송복섭(1916년생·사망·사진)씨의 1990년대 초 인터뷰 영상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40년대 초 강제 징용을 피하려 일본군 군무원으로 입대한 송씨는 45년 일본 패망 후 수마트라섬 팔렘방 지역에 꾸려진 자치조직 ‘조선인회’의 감찰역을 맡았다. 46년 2월 연합군에 체포된 뒤 같은 해 7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영국 법정에서 ‘전범’으로 재판을 받았다. 생전 인터뷰는 그의 증언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진행됐다. 증언은 매우 구체적이다. 송씨는 당시 팔렘방에 있던 일본군 위안부들은 ‘제1명월관’과 ‘제2명월관’에 나뉘어 있었다고 했다. 군인들이 치른 요금은 50전. 명월관 문 앞에 ‘한발(一發)에 50전’이라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명월관은 일본군에 협조하는 ‘끄나풀’이었던 한국인 형제가 운영했다. 송씨는 “일본 패망 후 그 형제가 격분한 한국인들에게 끌려가서 매를 맞았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진술했다. 영상에는 송씨가 감찰을 위해 작성했던 메모 속 위안부 피해자 수십명의 명단도 공개돼 있다.

태평양전쟁 희생자들과 그 유족의 증언을 청취해 온 유족회는 2004년부터 관련 영상을 하나씩 공개하고 있다. 일본 정부에 과거사 반성과 보상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유족회 측은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담화 발표 22주년을 맞아 4일 오전 충남 천안 ‘망향의 동산’에서 작고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행사를 갖는다. 고노담화 발표 전 일본대사관을 통해 강제연행 당시 상황을 증언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 16명 중 14명이 사망했고, 이 가운데 10명이 망향의 동산에 안치돼 있다.

박세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