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진영] 감정노동자 보호법

입력 2015-08-04 00:10

‘감정노동’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앨리 혹실드 교수가 1983년 펴낸 책 ‘관리된 마음(The managed heart)’에서 처음으로 개념화했다. 업무상 요구되는 감정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실제 감정을 속이는 노동유형을 말한다. 우리에게는 더 쉬우면서도 분명하게 이해되는 실례가 있다. 조용필의 노래 ‘그 겨울의 찻집’의 가사 중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와 한때 114 교환원들의 고객 응대 첫마디 ‘사랑합니다’이다. 감정노동의 정의와 사례를 적확하게 표현한 케이스다. 스마일마스크 증후군에 대한 지적과 함께 사랑의 감정마저 친절로 포장해 상품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콜센터 직원, 항공기 승무원, 식당 종업원, 백화점 판매원, 은행 창구직원, 아나운서와 리포터, 패스트푸드 점원 등 국내에는 대략 600만명의 감정노동자가 있다. 이들이 고객에게 받는 상처는 깊다. 스트레스를 경험한 뒤 다시 자신의 원 감정 상태로 돌아오는 ‘회복 탄력성’이 다른 직종 종사자들에 비해 크게 낮다. 감정과 표현을 스스로 구분하는 감정 부조화 현상은 일상적이다. 조직은 ‘미소 여왕’ ‘이달의 친절사원’ 등 감정생산에 경쟁을 도입해 감정의 도구화를 더욱 부추긴다. 혹실드는 감정노동을 새로운 차원의 착취라고 했다.

감정노동이 문제가 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면 이직률을 높이고 생산성을 낮추는 것은 물론 후유증이 사회적 비용으로 보상돼야 하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자를 위한 노력이 정치권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 황주홍 의원이 지난 5월 ‘감정노동 종사자의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발의한 것을 비롯해 심상정, 김기식 의원 등에 의해 모두 9건의 관련 법률안 개정안이 마련돼 있다. 지난 6월 말에는 국회에서 공청회가 열렸다. 그러나 법과 제도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이다. 고객과 소비자가 아니라 나와 이웃이라는 인식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