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경영권 분쟁] ‘신격호 지시서’ 이사회나 주총 결의 있어야 효력

입력 2015-08-03 02:49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을 지지하는 내용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 지시서가 공개됐지만 법적 효력은 인정되기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롯데가(家) 분쟁은 신 총괄회장의 ‘결정’보다 향후 열릴 주주총회에서 승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총회 이후에도 후계구도와 관련해 각종 법적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복잡하게 얽힌 롯데그룹의 기업구조 특성상 한·일 양국에서 동시에 민·형사 소송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지시서’라지만 ‘의견서’에 불과=신 전 부회장이 지난달 31일 공개한 신 총괄회장 지시서에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을 포함한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 6명을 해임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본인의 장남인 신동주를 한국롯데그룹 회장으로 임명한다’고 적힌 문서도 공개됐다. 법조계는 이런 지시서가 사실상 그룹 설립자의 의견서 이상의 효력을 인정받기 어렵다고 보고 있다.

법무법인 은율 손동환 변호사는 “상법상 대표이사직 해임은 이사회 의결로 가능하지만, 이사 해임은 주주총회에서 결정돼야 한다”며 “그룹 오너의 지시서라도 주주총회 의결이 있어야 효력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로고스 최진녕 변호사도 “이사 해임 지시는 설립자의 권위로 강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며 “법적으로는 신 총괄회장의 의견을 알리는 것 이상의 효력을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

롯데홀딩스 이사 7명 중 6명을 해임시킨다는 지시서 내용 자체가 유효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손 변호사는 “자본금 10억원이 넘는 회사에는 이사가 3명 있어야 하는데 이사 6명을 한 번에 해임한다는 내용이 효력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주총 후에도 법적 분쟁 ‘불씨’=형제간 힘겨루기는 결국 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가능성이 높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홀딩스 우호 지분을 토대로 지시서 내용을 주총 안건으로 올릴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이 주총에서 승리하더라도 신 전 부회장 측은 총회 결의 무효 소송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총회가 적법 절차에 따라 열렸다면 신 전 부회장 측이 이를 뒤집긴 어렵다는 게 법조계 분석이다.

신 총괄회장의 건강 문제도 변수다. 신 총괄회장이 주총에서 본인 지분의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는 법적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신 회장이 총회에서 질 경우 ‘아버지의 주권 행사는 의사 능력이 흠결된 상태에서 한 것’이라며 무효 소송을 낼 수도 있다. 정신적 제약이 있는 가족에게 법적 대리인을 선정해 달라고 법원에 청구하는 ‘성년후견인’ 제도가 이용될 수도 있다. 다만 법조계 관계자는 “아버지의 판단 능력을 법적으로 문제 삼는 건 사실상 끝까지 가보겠다는 것인데,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형제 모두 롯데그룹의 내부정보를 이용할 수 있는 점을 감안하면 계열분리 상황에 따라 민·형사 소송전이 벌어질 수도 있다. 실제 효성그룹의 경우 차남인 조현문 전 부사장이 장남 조현준 사장을 형사 고발해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최 변호사는 “양쪽 모두 잃을 게 있기 때문에 주총에서 승리해도 100%를 다 가져가지는 않을 것 같다”며 “결국 협의를 통해 지배구조를 정리하는 방안이 합리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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