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들인 가로정원, 물만 주고 방치 ‘쓰레기 정원’

입력 2015-08-03 02:05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구 남영삼거리 가로정원 화단의 모습. 먹다 남은 커피가 든 일회용 플라스틱 컵과 담배꽁초 등이 버려져 있다. 이동희 기자

곳곳에 담배꽁초가 버려져 있었다. 담뱃갑과 일회용 종이컵, 각종 영수증 따위도 바닥을 굴러다녔다. 화분이 휴지통처럼 보였는지 그 안에도 갖은 쓰레기가 쌓여 있었다. 허연 껌이 눌어붙다시피 한 화단 옆에는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버리지 말아주세요’라고 적힌 푯말이 나사가 빠진 채 덜렁거렸다. 3단으로 쌓아올린 1.5m 높이의 화단은 사람의 손길이 마지막으로 닿은 게 언제인지 모를 정도로 지저분했다.

지난달 26일 오후 둘러본 서울 용산구 남영삼거리 ‘가로(街路)정원’의 모습이다. 이 정원은 국민연금공단 용산지사 앞 50m 구간에 약 66㎡ 면적으로 만들어졌다. 서울시는 지난해 2∼12월 11억8000만원을 들여 남영사거리 등 4곳에 가로정원을 시범적으로 조성했다. 아름다운 경관과 휴식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취지였다. 용산구가 시 예산 3300만원을 지원받아 정원을 꾸민 게 지난해 8월이다. 1년도 안 된 정원이 벌써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가로정원은 기능 면에서도 제구실을 못하고 있었다. 남영삼거리 가로정원은 화단이 ‘ㄷ’자 모양으로 둘러싼 가로수 그늘에 오토바이 4대가 세워져 있었다. 정원은 주차금지 구역이다. 정작 의자를 놓은 쉼터는 뙤약볕에 드러나 있었다. 이날 서울 최고기온은 29도였다. 1분도 앉아 있기 힘들었다.

같은 날 중구 삼일대로 서울고용노동청 앞 가로정원도 너저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길이 100m, 면적 100㎡ 정도인 이 정원에도 담배꽁초와 담뱃갑, 아이스크림 포장지 같은 쓰레기가 버려져 있었다. 그 아래 흙바닥에는 바싹 말라 죽은 솔이끼가 누워 있었다. 나란히 늘어선 측백나무 네 그루는 잎이 말라 갈색으로 변했다. 명동 쪽 화단 한 곳은 식물이 아예 뿌리째 뽑혔다. 물웅덩이 위에는 쓰레기봉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난해 12월 조성됐지만 적어도 몇 년은 방치된 듯한 모습 탓에 정원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다.

회사원 최모(28·여)씨는 “근처에 직장이 있어 삼일대로를 매일 지나다닌다. 의자에서 가끔 쉴 수 있는 건 좋지만 쓰레기가 많아 주변이 너무 지저분하다”고 말했다. 경기도 시흥에서 명동에 나왔다가 들렀다는 유은아(31·여)씨는 “여기까지 오는 길에 노숙인을 만났다. 이런 공간이 생기면 밤에 아무래도 노숙인이 모여 위험하지 않을까”하고 우려하기도 했다.

◇구청 “물만 준다”=용산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관리 주체는 구청”이라면서도 “물주는 것 외에 딱히 하는 게 없다. 잡초를 뽑거나 그런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오토바이 주차에 대해서는 “불법이지만 오토바이를 세울 곳이 없다 보니 정원 조성 전부터 많았다”며 어찌 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중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관내 전체 녹지를 관리하는 현장 근로자가 5명으로 청소와 급수를 모두 한다. 가로공원이 1곳뿐이지만 전반적으로 인력이 부족해 매일 청소하기는 힘든 현실”이라고 했다. 이들 자치구는 기존 녹지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가급적 휴지통은 설치하지 않는다는 게 시나 자치구 방침이다. 서울시 공원녹지정책과 관계자는 “휴지통이 있으면 아무래도 사람들이 모여서 담배를 피우고 꽁초를 버린다. 가로정원이 더 지저분해질 수 있다”고 했다.

◇강남은 인근 건물에 관리 맡겨=당초 가로정원은 인근 건물주 등 민간에 청소를 맡기는 방식으로 관리할 계획이었다. 지금 그렇게 하는 곳은 강남구 테헤란로뿐이다. 이곳 가로정원은 길이 1100m에 면적 2000㎡로 가장 규모가 크지만 다른 곳과 달리 비교적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이따금 담배꽁초가 보였지만 쓰레기가 나뒹구는 수준은 아니었다. 죽은 식물도 보이지 않았다.

이 정원 관리는 르네상스호텔과 한국고등교육재단 등 4곳이 나눠 맡고 있다. 강남구는 지난해 8월 이들과 ‘나무돌보미’ 협약을 맺었다. 구에서 별도로 주는 편의는 없다. 르네상스호텔 관계자는 “정원이 조성되면 도시 조경에 좋고 호텔 앞 분위기에도 도움이 돼 협조하게 됐다”고 말했다. 호텔 측 외부 청소 담당자들은 매일 30분 정도 정원에 나가 쓰레기를 줍고 테이블과 의자를 닦는다. 식물에 물주는 일도 이들이 한다.

중구는 이런 방안을 추진하다 실패했다. 인근 장교빌딩 측에 제안했지만 건물 주주가 많아 합의에 이르기 어려웠다고 한다. 주민 봉사단에 맡기는 방법도 검토했으나 거주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역시 쉽지 않았다.

◇“시민이 함께해야”=삼일대로 가로정원에서 만난 김윤남(66)씨는 “구청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식도 문제다. 사람들이 남의 눈에 안 보이면 쓰레기를 막 버리고 그러는 게 있는데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노인들에게 쓰레기 줍는 소일거리를 주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고 덧붙였다.

용산구 가로정원 조성에 참여한 정경진 ㈜이자인 대표는 “가로정원의 성공 여부는 유지 관리에 달려 있는데 시나 구, 시민단체 등 누가 직접 관리하는지 명확하지 않다”며 “시민이 정원을 관리할 수 있도록 활동프로그램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창욱 고승혁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