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경영권 분쟁] 일본기업? 한국기업? 롯데, 정체성 논란 확산… ‘왕자의 난’ 또 다른 불똥

입력 2015-08-03 02:45

국내 재계 서열 5위의 롯데그룹이 최악의 정체성 논쟁에 휩싸이고 있다. 롯데그룹은 ‘왕자의 난’을 계기로 ‘당신들은 어느 나라 기업입니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받고 있다. 국민들의 반일 감정이 겹치면서 정체성 논란이 확산되는 기류다. 롯데그룹은 유통 호텔 관광 제과 등 주력 사업들이 대부분 소비재 산업이다. 소비자들이 등을 돌리면 그룹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특히 면세점 사업 확대, 중국 등 해외진출 확대, 제2롯데월드 건설 등 공격적인 경영을 펼쳐왔던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에게는 타격이 상당할 전망이다.

롯데그룹의 발원지가 일본이라는 점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왕자의 난이 진행되면서 그룹의 근원이 새삼스레 부각됐다. 일본 부인들이 다수 등장하는 오너 일가의 가계도가 조명됐고, 신동주(61) 전 롯데홀딩스 부회장의 일본어 인터뷰는 치명적이었다.

신동주·신동빈 두 형제는 모두 일본인 시게미쓰 하쓰코(88)의 소생이다. 두 형제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교육받았으며, 일본에서 첫 직장생활을 했고, 현재 부인과 자녀들도 일본에 살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부인(시게미쓰 마나미·56)은 일본인이며, 일본에 살고 있는 1남2녀의 자녀들도 모두 일본 국적이다. 신 전 부회장의 재미교포 부인(51)과 일본 국적인 아들(22)도 일본에 거주 중이다. 게다가 한·일 롯데그룹 지배구조 정점에는 지분구조도 베일에 싸인 일본 롯데홀딩스가 자리 잡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의 이사회 멤버들은 신동빈 회장을 빼면 모두 일본인들이다. 신격호(93) 총괄회장과 두 형제가 모두 한국 국적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오너 일가의 일본 색채를 지우기 힘들어 보인다.

물론 일본에서 성장해 한국으로 진출한 롯데그룹의 역사성을 무시한 채 오너 일가의 일본 색채만을 근거로 롯데그룹을 일본 기업이라고 매도하기도 어렵다. 한국 롯데그룹이 벌어들인 돈이 일본으로 흘러가는 구조도 아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2일 “한국 롯데와 일본 롯데는 1990년대 이후 독립적으로 경영돼 왔다”며 “한국 롯데에서 일본으로 이익금을 보내는 구조가 아니다”고 밝혔다. 롯데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롯데홀딩스는 매년 한국 롯데 계열사들로부터 지분율에 따른 배당을 5000억원 정도 받아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실제 일본으로 넘어가는 돈은 100억원 정도에 불과하며 나머지 금액은 국내에 재투자된다고 한다.

한국 롯데 계열사들이 일본으로부터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려오는 경우도 많다. 기업 활동에 일본 롯데가 도움이 되는 지점이라는 게 롯데 측의 설명이다. 실제로 제2롯데월드 건설 시행사인 롯데물산은 올해 초 일본롯데홀딩스와 미쓰이스미토모은행 등으로부터 3920억원의 장기 차입금을 2.30∼3.28%의 이율로 빌렸다고 공시했다(2014년 말 기준). 롯데 관계자는 “일본에서 롯데그룹의 신용도가 좋아 일본 자금 유치에 조건이 좋다”고 전했다. 게다가 83조원 규모의 한국 롯데는 5조원 안팎인 일본 롯데에 비해 20배 정도 크고, 고용 창출도 크다. 롯데그룹은 10만명의 임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매년 1만명 이상을 채용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롯데그룹을 일본 기업으로 매도하기는 곤란하지만, 왕자의 난으로 인한 타격은 심각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도영 기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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