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을 세워야 하고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원칙과 신뢰의 근간은 안전성이다.” 한국의 원자력발전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도 입장에 따라, 사안에 따라 제각각이다. 그러나 어떤 방향으로의 원전 정책이든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일관된 원칙이 서야 한다는 데는 모두 입을 모았다. 그리고 그 원칙은 정부의 의사결정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판단과 규제가 확실히 이뤄졌을 것이라는 신뢰가 쌓여 있어야만 가능하다. 40년을 내다보고 있는 한국의 원전 역사에서 한번도 이뤄지지 못한 원자력발전의 명암에 대한 공개적이고도 균형 잡힌 공론화 작업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일관성 없는 에너지 정책 바로 세워야=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한국 원전 정책, 더 크게는 에너지 정책에 일관성이 없음을 지적했다.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안전연구본부장은 31일 “올해 결정된 월성 1호기 재가동과 고리 1호기 영구정지는 함께 놓고 이해하기 어려운 서로 다른 결론”이라면서 “저신뢰 사회의 문제점과 정책 일관성 부재 문제가 여실히 나타난 것”이라고 꼬집었다.
임만성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도 “정책 결정과정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 현재 한국 원전 정책의 문제”라면서 “사안에 따라 정부의 필요에 의해 또는 정치적 합의에 의해 결정이 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락가락’ 정책의 이유는 분명하다. 37년째인 한국 원전 정책은 시작부터 정부 주도의 일방통행 방식이었다. 원전 정책의 장기적인 방향과 우선순위, 체제, 안전성 등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나 사회적 논의가 한번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상황에서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과 같은 외부 요인이 터져 나오자 모든 것이 뒤엉켜버린 식이다.
탈핵에너지교수모임의 이성로 안동대 행정학과 교수는 “경제성장에 올인하는 과정에서 당장의 이익에 급급해 정책을 추진해오다 보니 장기적인 상황에선 누군가 뒷감당을 해야 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세계 최대 원전 밀집국 한국…“원전 정책 최우선 사항은 안전성”=한국 원전 정책의 최우선 사항이 무엇이 돼야 하느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언급된 키워드는 역시 ‘안전성’이었다. 이외에 에너지안보(안정적 에너지 공급), 소통과 신뢰회복 등이 언급됐고 ‘폐로’가 유일한 선택지라는 응답도 있었다. 대부분 전문가가 원전의 안정성과 신뢰회복을 현재 한국 원전 정책 결정의 최우선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김정욱 서울대 환경대학원 명예교수는 “우리나라는 세계 제1위의 원전 밀집국(면적 대비 가동 원전이 가장 많음)이고 가동률도 세계 최고 수준”이라면서 “그런데 원전 폐쇄에 대한 준비는 하나도 돼 있지 않고, 안전 정비 기간이나 안전 관리 인원은 미국 일본보다 적다. 불안감이 높은 건 당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자력발전소의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서는 원자력 안전규제 기관의 존재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는 제언도 나왔다. 정동욱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최우선돼 할 일은 신뢰회복인데, 이를 위해서는 원자력 안전규제를 하는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보내는 메시지를 국민이 믿을 수 있도록 독립성과 위상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재준 부산대 원자력안전연구센터장도 “원안위와 원자력안전기술원에 총 500명이 넘는 전문가들이 안전 관련 규제 분야에서 일하지만 국민들은 이런 프로세스를 잘 모르고 있다”면서 “규제기관의 역할과 기능, 전문성에 대해서도 잘 알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투명·신뢰·소통으로 국민 판단 받아야=송하중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나를 따르라’식 국가 정책은 국민들에게 거부 반응을 낳았다”면서 “원자력에 대해 국민들은 불안해 할 기회만 있었을 뿐 원자력을 알아갈 기회는 별로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한국 에너지 정책에 있어 원자력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국민적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면서 “원자력의 불안감부터 원자력을 배제하는 정책을 선택할 경우 펼쳐질 시나리오 등에 대해서도 열어놓고 따져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욱 교수도 “독일의 경우 사회적으로 가장 존경받고 신뢰받는 인물 17인으로 윤리위원회를 만들어 찬반 토론을 거쳐 만장일치로 원전 폐쇄를 결정했다”면서 “한국 정부도 (원점에서부터) 국민들과 소통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정부와 한국수력원자력이 국민들과 소통하는 데 미흡했다”면서 “이슈에 대해 해명하는 게 아니라 정확한 내용을 알리고 설득해 불안을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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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電 우리에게 무엇인가] 일관성 없는 원전 정책이 ‘국민 불신’ 불렀다
입력 2015-08-03 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