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사진기가 최초로 시연된 1839년, 화가 폴 들라로슈는 “오늘부터 회화는 생명을 잃었다”며 비탄에 빠졌다. 사진이 화가의 고유 영역이던 초상화나 인물화를 대체하게 됐기 때문이다. 재현의 몫을 카메라에 넘겨준 화가들은 그림에 ‘주관’을 담기 시작했다. 인상파의 시작이다. 세잔(1839∼1906)은 ‘보이는 자연’이 아니라 ‘보여지는 자연’을 그렸다.
그는 생빅투아르산을 소재로만 유화 44점, 수채화 43점을 남겼다. 위치와 느낌에 따라 각각 다르게 산을 그린 것이다. 이어 다중적이고 동시적으로 대상을 구현하는 입체파가 나왔다. 피카소가 대표적이다. 곧 몬드리안과 같은 추상주의자가 대거 등장한다. 사물의 형태를 배제한 채 점, 선, 형, 색만으로 감정을 표현했다. 결국 ‘감정’은 재현의 위기를 돌파하는 입구가 됐다.
움직이는 그림인 애니메이션은 그동안 수많은 캐릭터를 선보였다. 신데렐라와 같은 동화 속 주인공부터 미키 마우스 같은 동물. 스머프와 같은 상상 속 생명체. 멋진 로봇, 아톰까지. 1923년 설립된 애니메이션 제작의 본산, 디즈니. 근래 디즈니가 인간 내면에서 무언가를 한참 발굴 중인 것 같다.
2013년 디즈니가 내놓은 ‘겨울왕국’은 안나와 엘사의 감정적 냉혹함과 따뜻함을 내내 대비했다. 올해 초 국내에 개봉된 ‘빅 히어로’에는 힐링로봇 ‘베이맥스’가 등장한다. 베이맥스는 “상실감에 가장 좋은 치료법은 위로와 포옹”이라고 말한다. 이런 로봇은 없었다. 현재 상영 중인 ‘인사이드 아웃’은 사춘기 소녀 라일리의 내면 여행이다.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이라는 ‘감정 캐릭터’가 실질적 주인공이다. 애니메이션 최초의 캐릭터이다. 슬픔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신호이고, 위로로 슬픔이 기쁨으로 전환된다는 공감의 원리를 보여준다. 일단 디즈니가 ‘감정’의 세계로 흥미진진하게 진입했다. 박수! 앞으로 ‘추상’ 애니메이션이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강주화 차장 rula@kmib.co.kr
[한마당-강주화] 디즈니의 진화
입력 2015-08-03 00:10